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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대재해법]①"취지 공감에도 과잉 처벌·실효성 논란 여전"

김겨레 기자I 2021.02.23 06:00:00

이데일리-대륙아주 라운드테이블
"중대재해법·산업안전법 충돌"
"모호한 조항 많아 집행에 어려움"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이 과잉 처벌·실효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여야 합의로 법을 성안했지만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체계와 충돌하는 데다 법안 곳곳에 모호한 조항이 많아 수사기관과 집행기관이 법 집행을 꺼릴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18일 오후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에서 참석자들이 ‘중대재해법 통과 후 변화하는 경영환경·노사관계와 입법적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는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대재해처벌법 TF팀장,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이영 국민의힘 국회의원,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승철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연구 소장 등이 참석했다.
◇전문가들 “모호한 조항·기존 법과 충돌” 지적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18일 서울 중구 KG타워에서 열린 법무법인 대륙아주 입법전략센터와 이데일리 공동 주최로 열린 ‘중대재해법 통과 후 변화하는 경영환경·노사관계와 입법 과제’ 라운드 테이블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는 “쟁점이 매우 많은 데다 개정법도 아닌 제정법을 법안 통과 일정을 못 박고 짧은 일정에서 심의하다 보니 법리적인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며 “법 시행 전후로 위헌심판 제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법”이라며 “산안법과 중첩되는 경우도 많아 집행 과정에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명확성의 원칙 위배와 과잉처벌이 중대재해법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정의가 모호하고, 중대재해 방지 의무가 경영책임자에게만 있는 것처럼 규정되어 오히려 다른 조직 구성원의 무관심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안전 보건 의무’와 ‘재해 방지 대책’ 역시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표현으로 되어 있어 경영책임자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대재해법은 엄벌주의에 따른 기본권 제한 성격이 매우 강하므로 명확성 측면에서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며 “실효성 측면에서도 법 집행을 위해선 명확성의 원칙은 꼭 지켜야할 철칙”이라고 강조했다.

형벌 규정이 모호하고, 형벌이 높을 수록 수사기관과 집행기관도 법을 더 엄격하게 해석해 오히려 무죄가 속출할 공산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정 교수는 “여론이 들끓으면 정치권으로선 가장 손쉬운 방법이 엄벌을 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처벌하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악법이 되어버린다. 이는 표퓰리즘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일례로 환경범죄단속가중처벌법은 지난 1991년 제정됐으나 가중처벌을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산안법과 충돌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정 교수는 “산안법에선 동일한 규정에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여기선 형벌로 다스리고 있다”며 “균형이 맞지 않아 나중에 위헌이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검사 시절 산업재해 수사 경력이 있는 김영규 변호사(대륙아주 중대재해처벌법TF팀장)도 “입법 취지엔 공감하지만 처벌 수위가 매우 높은 법이므로 중대재해의 개념 자체도 산안법보다 엄격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법정에서도 이를 어떻게 해석할 지 자신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산안법에 의해 수사를 하는 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과 중대재해법에 의해 수사하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다르게 나올 우려도 크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은 포괄위임금지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이라는 헌법상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며 “국회가 스스로 헌법에 합치하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에서 열린 ‘중대재해법 통과 후 변화하는 경영환경·노사관계와 입법적 과제’ 라운드테이블에서 참석들이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영규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대재해처벌법 TF팀장,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이영 국민의힘 국회의원,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승철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연구 소장. (사진=방인권 기자)
◇“위험의 외주화 막아야” 한목소리…추후 보완입법 필요

다만 하청업체만 산업재해의 처벌을 받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산업재해를 줄여야 한다는 입법 취지에 대해선 대부분의 참석자가 공감했다. 또 제정법인 만큼 추후 하위 법령을 구체화하는 등 보완 입법 필요성도 대두됐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은 “산안법 위반 처벌이 현장 노동자나 하급 관리자에 집중되고 있다”며 “원청이 하청에 막대한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특성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예방을 목적으로 한 입법”이라며 “모호한 부분에 대해선 필요하면 보완하고 개정하고 발전시켜야지, 법 자체를 폄하할 것 까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영 국민의힘 의원도 “3~5년의 경과를 꾸준히 살펴보며 일몰 폐지 또는 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철 대륙아주 입법전략센터장은 “중대재해법 도입 취지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기업 입장에선 규제 정도보다 불활실성이 더 위험하다. 아무리 강한 규제이더라도 예측 가능하면 지키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회가 있다면 하위 법령 규정을 통해서든 재개정이든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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