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혐한'의 시작은..."한일관계의 역전 때문이다"

김은비 기자I 2021.01.27 06:00:00

한일역전
이명찬│400쪽│서울셀렉션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강제 징용 피해 배상과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1년 반이 넘었지만 여전히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양국 간 감정은 악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일본에서는 ‘혐한’ 감정이 돌출됐다. 일례로 2019년 8월 27일 일본 지상파 방송인 ‘고고스마’에 출연한 한 교수는 “노상에서 일본인 여성 관광객을 덮치는 것은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며 “일본 남자도 한국 여성이 들어오면 폭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증오 범죄를 선동하는 발언을 했다. 이같은 혐한의 실상은 날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한국의 ‘반일’ 감정은 어느 정도 과거 식민지 역사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일본의 ‘혐한’은 단순히 강제징용 문제, 수출 규제 때문일까. 한일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이유는 “한일 간의 달라진 힘의 균형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이 같은 한국과 일본의 힘의 역전 과정에 주목했다. 이미 수년전부터 경제적 측면에서 한일간의 격차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각종 경제 지표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양국의 민주주의 격차는 물론, 최근 코로나19 방역에서도 일본의 병패가 드러났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은 특히 이 같은 주장을 한국의 민족주의 시각이 아닌 일본인들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파헤쳤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으면서 양국 관계에 물꼬를 텄다. 당시 두 나라 국력은 10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실제 1960년 기록에 따르면 한국은 아프리카의 빈곤한 나라보다 가난했다. 그로부터 5년 후 협정이 맺어졌다. 책에 따르면 한국의 외교관 수는 30~40명에 불과했고 일본은 1000명이 넘었다. 외교 협상력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당시 협정으로 강제징용, 위안부 동원 등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지만 한국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고, 지금껏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다.

50년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지만, 일본의 성장률은 떨어지면서 양국은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가 됐다. 가장 상징적인 지표로 양국 국내총생산(GDP)의 역전을 언급한다. 저자는 2017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1인당 GDP에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고 말한다. 물가 등을 감안하면 한국 국민의 생활 수준이 일본 국민보다 더 높아졌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현재의 시장가격으로 계산하는 명목 GDP도 한국이 곧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는 여기에 일본의 후진적인 민주주의와 일본 행정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극명히 드러냈다. 전근대적 관료시스템이 유지해온 칸막이 조직 문화와 상사에 순종적인 기질 등으로 이 시스템은 설명된다. 피시아르 검사를 그토록 아베 정권이 막아온 것은, 무엇보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음은 이미 알려져 있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과 도쿄 올림픽 개최라는 당면 목표를 위해, 코로나19를 가볍게 여겼던 결과다. 반면 한국은 세계 속에서도 방역으로 높이 인정을 받았다.

문제는 일본인들이 이 같은 급격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장노년층에 만연한, 한국을 여전히 내려다보며 과거 식민지 국민 취급하는 듯한 혐한 인식에 변함이 없다. 한국과 일본이 협상테이블에서 동등한 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일부 한국인들 역시 일본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그러면서 그는 “양국 모두 일본이 우월하다는 믿음을 깨지 못하면 지금의 한일 갈등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1965년 체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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