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나라의 부양 강도는 더하다. 미국 의회는 지난 3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약 3조달러(약 3706조원)에 달하는 부양책을 처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감세 공론화까지 나섰다. 급여세를 감면하고 투자세액공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최근 감세 기조를 분명히 했다. 올해 부가가치세율 인하 등을 통해 약 2조5000억위안(약 432조원) 규모를 감세 목표로 잡았다. ‘과감한 재정’에는 직접 돈을 푸는 조치 외에 걷는 돈을 줄이는 조치가 동시에 포함된 셈이다.
“한국은 전염병 확산 단계를 지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침체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은 세금 부담을 줄이는 게 가장 우선입니다.”
지한파 거시경제 석학으로 꼽히는 마크 빌스(62) 미국 로체스터대 석좌교수는 26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에 재정 지출 확대와 감세 정책을 병행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콕 찍어서 “일시적으로라도 세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 초 서울대 경제학부 강단에 서기도 한 대표적 지한파 학자다. 그가 한국 경제 사정에 밝은 이유다. 그는 서울대가 2012년부터 진행한 ‘노벨상급 해외석학 유치사업’ 대상으로 한국을 찾은 14번째 석학이다.
◇“코로나19 이후…감세 가장 필요”
빌스 교수는 “직접적인 재정 지급보다 세율 인하가 경기 부양을 더 자극할 것”이라며 “이는 중간 이상의 계층보다 낮은 근로자에게 훨씬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에 성공하려면 뿌리는 돈만 늘리는 ‘반쪽짜리’ 경기부양책이 아닌 아닌 걷는 돈을 동시에 줄이는 쌍끌이 전략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지난달 10~23일 전국 1234개 중소기업 대상) 결과 가장 많은 중소기업 현장의 요청은 법인세 및 소득세 세율 인하(67.6%)로 나타났다. 재정 확대에 비해 감세정책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한국 정책당국이 곱씹어볼 만한 조언이다.
빌스 교수는 “이번 침체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라며 “여력이 한정된 단기 정책의 특성상 전방위적이고 공격적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경기 팽창정책을 할 때는 작은 실수를 하는 것에 너무 개의치 않아야 한다”며 “특히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재정 불균형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문제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고 했다.
빌스 교수는 하지만 이같은 대책들은 모두 ‘일시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일시적으로(be temporary) 시행하는 조치여야 한다는 점”이라며 “앞으로 6개월 후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당면할 수 있는 어려움은 재정 확대 여력이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까지 내다보는 재정 운용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마냥 ‘큰 정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가장 대표적인 후유증은 부채 급증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인용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을 보면, 37개 회원국의 국가부채는 코로나19 사태로 최소한 약 17조달러(약 2경1130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10여년 전인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빌스 교수는 “시기를 정해놓지 않고 무한정 팽창 일변도로 가면 정부의 역할이 후퇴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큰 정부, 반드시 ‘일시적’이어야”
빌스 교수는 아울러 “일터가 문을 닫을 정도로 재난 수준의 코로나19 확산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일종의 사회보험(the form of social insurance·사회 구성원의 경제상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한 보험제도)을 꼭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경기부양 지원금(stimulus payments), 긴급 기업 대출(loan to business)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의 또다른 리스크로 신흥국 위기를 꼽았다. 미국과 중국, 유럽을 강타한 코로나19 확산이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번질 경우 위기의 골은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빌스 교수는 “신흥국은 대부분 원유 등 상품가격의 하락과 안전자산(특히 선진국이 발행한 국채)으로 투자 수요 이동 탓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문제는 이같은 위기를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일례로 중남미의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5.3%에 불과하다.
그는 “(신흥국 위기는) 일부 선진국의 확장 정책의 필요성을 더 높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자금 지원 요청은 쇄도하고 있다. 대다수가 신흥국이다. 1190년대 말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 IMF에 손을 벌린 것과 똑같다. IMF는 각국의 국제무역 규모, 국민소득액 등에 따라 회원국 정부의 출자로 이뤄진다.
빌스 교수는 그러면서 “각국 당국의 완화적인 재정·통화정책은 세계 경제의 침체를 막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30년대 대공황과 비교하면 충격이 더 큰가’라는 질문에는 “대공황은 10년간 계속됐고 20% 이상의 실업률이 수년간 이어졌다”며 아직까지 대공황 수준의 경제위기로 보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빌스 교수는…
△1958년생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과 졸업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석·박사 △전미경제연구소(NBER) 특별연구원 △후버연구소 특별연구원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 △세계계량경제학회 특별회원 △서울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