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헤일리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6개월여 전부터 사임 의사를 밝힌 헤일리 대사를 존중한다. 이를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또 다른 중책을 맡아 행정부에 복귀하길 고대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헤일리 대사는 “유엔대사로서 지난 2년간의 외교업무는 매우 흥미로웠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성공을 빌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 언급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실제 헤일리 대사의 사임 배경이나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해 알려진 게 없다. 헤일리 대사는 ‘대선주자급’인 만큼 2020년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을 뿐이다.
다만, 미 언론들은 “헤일리 대사가 2020년이 아니라면 2024년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글로벌 포용정책을 책임졌던 브렛 브루언은 “유엔대사들은 유엔에서의 성공을 위해 전체 임기 동안 머무르는 게 일반적”이라며 “헤일리 대사의 결정엔 정치적 계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민주당이 하원이나 상원을 다시 장악할 수 있는 중간선거 후 행정부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본 것처럼, 그녀는 대통령 선거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이 아니라면 2024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책적인 ‘충돌’이 사임 배경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날 가장 먼저 헤일리 대사의 사임을 보도한 악시오스는 지난달 7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헤일리 대사의 기고문에 주목했다. 워싱턴 정가에 핵폭탄급 파문을 던진 뉴욕타임스 익명 기고 파문에 자산의 이름이 거론되자 이를 반박하기 위해 쓴 이 기고문에서 헤일리 대사는 “대통령에게 직접 얘기해도 통하지 않고 행정부의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사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미 외교안보팀이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NSC 보좌관의 ‘투톱’ 체제로 재편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시절 사실상의 ‘원톱’이었던 헤일리가 폼페이오 장관의 등장에 뒤로 밀려나자 자존심이 상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원래 헤일리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던 인물이다.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 당시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다음 달인 12월 헤일리 대사가 2011년 주지사를 지냈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들의 요구를 수용, 헤일리 대사를 유엔주재 미국대사에 지명했다. 헤일리 대사는 이듬해 1월말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취임했다. 헤일리 대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주지사이자, 미 최연소 주지사 타이틀을 갖고 있다.
헤일리의 후임엔 일단 파월 전 NSC 부보좌관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그(파월)는 내가 확실하게 고려 중인 인물”이라고 했다. 파월 전 부보좌관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초 백악관의 중동정책 등을 주로 다뤄왔다. 이방카 트럼프와 가까이 지내면서 ‘이방카의 여자’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백악관을 떠난 뒤 올 2월 골드만삭스에 복귀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기자들에게 “이방카보다 경쟁력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방카가 급부상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정실인사로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한 발 빼는 모습도 보였다. 파문이 확산하자, 이방카는 트위터에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며 직접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