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노조가 단체교섭과 파업 등 노조 활동이 중앙 노조(한국노총·민주노총 등)의 책임과 지침에 따라 이뤄지다보니 개별 기업의 고충보다는 중앙 노조의 정치적인 논리로 움직이는 경우가 발생한다. 발레오전장시스템 노조가 대표적 사례다.
발레오전장시스템 노조는 “각 기업노조가 사용자 측과 협상에서 힘이 약하다보니 산별노조에 가입해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기업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며 “최근들어 노조원들이 중앙노조의 생각과 달리 근로자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노조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산별노조 5년새 2.5배 증가
산별노조는 형식적 체제가 갖춰진 2001년 금속노조 출범을 기점으로 해 올해까지 17년차를 맞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별노조는 2010년 59개에서 2011년 65개, 2012년 90개, 2013년 113개, 2014년 131개, 2015년 142개다. 5년 새 2.5배나 늘어났다.
산별노조원들도 2010년 74만 4917명에서 2015년 95만 4082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고용부 관계자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 소속이 되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고 보는 노조가 많아 산별노조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산별노조가 제구실을 못한다는 각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경우만 봐도 80%가 산별노조로 조직돼 있지만 기존 기업노조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나 기아자동차지부는 사실상 기업별 교섭 체계를 유지하면서 산별교섭에 불참하고 있다.
금속노조를 비롯해 금융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3대 산별노조는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보호에 관한 진전된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산별노조에 가입한 노조의 연대가 느슨하게 이뤄지면서 공통된 요구를 관철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산별노조가 각 지회와 공동이익을 위해 힘쓰기보다 정치적 목적이 강한 집회와 민중총궐기 투쟁에 나서면서 노조원들을 강제로 동원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 후보들도 기존 산별노조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개선사항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산별노조 지원, 산별교섭 제도화 등 산별교섭 촉진, 산별노조가 체결한 대표적 단체협약의 효력확장을 제시했다.
대선후보들은 산별노조를 주도하는 일부 강성·대형노조에 대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한 한국방송기자클럽 후보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강성노조 개혁에 대해 “특혜를 누리는 노조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노조가 취업과 관련해서 자식들 고용 승계를 하는 ‘취업장사’ 행태를 보였다. 이를 용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지난 19일 진행된 KBS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일부 노조의 고용세습에 대해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무역협회 초청 특별강연에서 강성노조 타파를 외쳤다.
그는 “근로자의 전체 3%도 안 되는 강성 귀족노조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걸핏하면 마치 97%의 근로자를 대변하는 양 모양새를 취하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면서 “청년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기존 강성노조를 타파 하겠다”고 밝혔다.
◇ “무늬만 산별노조…조합원 의지 반영해야”
전문가들은 매년 늘고 있는 산별노조가 변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별노조를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정치적 색깔을 띈 집회 동원용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조합은 소속된 조합원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서 “이는 근로조건 개선으로 이끌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데 그동안 산별노조는 제 역할을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별노조는 같은 산업군내 기업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매개체다. 산별노조 체제가 정착하고 지속 가능한 노조의 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역할의 성숙도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 노조 등 대기업 노조는 무늬만 산별이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는 지도부의 전략이 미숙하거나 과도하게 기업별 노조체계에 치중했던 결과”라며 “산별노조 형태는 기업 노조가 비정규직 근로자와 하청업체 문제를 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도부가 좀 더 책임의식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