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필요하다면 복수는 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후련해지는 것은 아니다”(고선웅 연출).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趙氏孤兒)’를 오늘날의 시선으로 각색한 국립극단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22일 마지막 무대를 남겨놓고 있다.
지난 4일부터 공연에 출연중이던 배우 임홍식(62)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의 유작이 된 작품은 잔여 회차의 공연을 모두 취소하려 했지만,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해 연기했던 고인을 기리자는 동료의 뜻을 모아 남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임씨는 19일 오후 9시쯤 출연 분량을 모두 연기하고 퇴장한 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의식을 잃었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후 인근 백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고인은 서라벌고 연극반을 통해 연극에 입문해 1978년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뒤부터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기작으로는 1979년 극단 현대극장의 ‘피터팬’, ‘실수연발’, ‘종이연’ 등이 있다. 떠나는 날까지 무대를 지킨 고인의 공손저구 역할은 같은 연극에 출연하는 조순 역의 배우 유순웅이 대신한다. 공손저구는 주인공인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의인 중 한명이다.
|
웃음과 눈물이 한 데 섞여 끝으로 치달을수록 더 자인한 비극으로 읽힌다. 작품은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하게 되는 비운의 필부 ‘정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 끝에 살아남은 고아 ‘정발’을 자신의 자식이자 도안고의 양자로 키우며, 20년 동안 복수의 씨앗을 길러낸 정영은 마침내 도안고에게 복수를 행한다.
임씨의 생애 마지막 역할이 된 ‘공손저구’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노인 역이다. 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은 한 매체를 통해 “화려한 스펙의 배우는 아니었지만 성실하게 극중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명배우”라며 “특히 유작이 된 이번 작품에선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고 말했다.
고선웅 연출은 직접 손글씨로 써 “선생님, 저희는 꿋꿋이 그리고 끝까지 무대를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무대의 영광을 끝까지 고스란히 선생님과 함께 나눈 결심입니다. 무대 위에, 뒤에 서는 우리와 여전히 함께 해주시고 응원해주십시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대를 딛고 서겠습니다”라는 글을 적었다.
‘공장’ ‘차이메리카’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함께 출연한 배우 성노진은 “좀 있으면 선생님이 안 계신 무대에 서야 된다. 눈물이 앞을 가려 어떻게 연기를 해야할지 자신이 없지만 성생님의 뜻을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과연 ‘복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묵자’의 대사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힌다.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소리, 피리 소리에 맞추어 놀다 보니 어느새 한바탕의 짧은 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보면 어느새 늙었네. 알아서 잘들 분별하시기를. 이런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배우 장두이, 하성광, 이영석, 호산, 강득종, 김명기, 이형훈 등이 출연한다. 고인을 대신해 유순웅이 연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