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 이걸 어떻게 마셔요? [물에 관한 알쓸신잡]

이명철 기자I 2022.07.16 13:20:44

아메리카노의 기원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필자는 찬 음료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 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합니다. 커피 전문점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요”라고 주문하면 점원은 “네? 따뜻한 아메리카노요?”하고 되묻습니다. 이렇게 푹푹 찌는 더위에 정말 뜨끈뜨끈한 커피를 주문한 게 맞는지를 확인하는 거지요.

(사진=이미지투데이)


요즘 같이 더운 날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음 팍팍 넣은 시원한 음료를 즐기는 게 어디 여름뿐이겠습니까?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족은 점점 늘어납니다. 덕분에 몇 년 전부터는 겨울철 찬 음료 주문량이 따뜻한 음료 주문량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커피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의외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럽인들에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물론이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낯선 음료입니다.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권하고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몇몇 유튜브 방송이 있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든 그들은 하나같이 이걸 어떻게 마시냐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커피는 항상 뜨거운 에스프레소로 각인됐기 때문에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고 얼음을 띄워 빨대로 먹는다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을 겁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처음 본 유럽인들이 왜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짓는지 완벽하게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 쌍화차를 예로 들어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합니다. 쌍화차는 항상 진한 한약 냄새와 함께 따뜻하게 마시는 음료입니다.

만일 유럽의 어느 카페에서 쌍화차를 한잔 주문했는데 물을 섞고 얼음을 띄운 시원한 쌍화차가 나온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메뉴를 개발한 바리스타는 진한 한약 냄새 때문에 물을 좀 섞었고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기 위해 얼음을 띄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각국에서 커피가 유행한 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호평을 받고 대중에게 파고들지는 못했습니다. 아메리카노의 고향인 미국에서조차 커피가 대중화되는 과정은 일종의 대타로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커피가 유행하기 이전의 음료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홍차였습니다.

그런데 영국 정부가 세금을 더 걷을 목적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 공급되는 홍차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합니다. 가뜩이나 영국 정부에 불만이 많던 미국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키고 이 사건을 계기로 홍차를 비롯한 영국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집니다.

기호품은 당장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지만 기호품이 사라졌을 때 밀려오는 허전함은 의외로 큽니다. 기호품인 담배와 술이 없을 때 느끼는 허전함처럼 말이죠. 미국사람들은 사라진 홍차의 허전함을 메꿔줄 음료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때 눈에 띈 것이 커피였습니다. 홍차를 대신해 마시는 음료였기 때문에 홍차와 비슷하게 묽은 커피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커피가 아메리카노의 기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시 아메리카노라는 커피 메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카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세계 2차 대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3년, 점령군으로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 입맛에 에스프레소는 본토에서 마시던 연한 커피에 비해 너무 진했습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시기 시작합니다.

(사진 = 이미지투데이)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미국 사람들은 커피 마실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조롱을 담아 그 커피를 ‘미국 사람’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는 설입니다. 물론 이것도 추측일 뿐 확실한 기원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메리카노의 이 기원설을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아메리카노가 정말 미국 사람들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었다면 어떻게 스타벅스의 커피 메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아메리카노는 조롱의 의미보다는 사전적 의미인 미국 사람에서 확장되어 ‘미국 사람이 마시는 커피’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쟁으로 유명해진 커피는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도 전쟁의 아픔과 함께 전해집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최초로 전해진 역사는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일반 국민들에게 대중화된 계기는 6.25 전쟁 중 미군을 통해 커피가 대량으로 전해지면서부터입니다.

연하게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설탕과 커피크림을 듬뿍 넣어 달달하고 고소한 달달이 커피가 인기였습니다. 아메리카노에 이은 ‘코리아노’가 만들어진 셈이지요.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다방과 자판기를 통해 ‘달달이 커피’ 입맛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사람들의 커피 입맛은 1990년대 말 한 커피 전문점이 생기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로 19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점 문을 연 스타벅스입니다.

스타벅스에서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신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랬습니다. “이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마시는 거지?” 밥값보다 비싼 커피값은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사치를 일삼는 여성을 비하하는 ‘된장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든 모습이 마치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세련된 뉴요커를 연상시키는 듯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달달이 커피에 익숙했던 입맛이 아메리카노로 바뀌면서 담배연기 자욱했던 다방은 사라지고 은은한 커피향의 카페가 늘어납니다.

우리가 즐기는 기호품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습관도 처음 접했을 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입맛에 맞지 않던 음식도, 몸에 맞지 않던 생활 습관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나면 어느덧 자연스러워지니 말입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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