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여야정 이견 없는데…후순위로 밀린 차등의결권 논의

김겨레 기자I 2021.02.16 06:00:00

벤처기업육성법 개정안, 국회 산자위 계류
연말 정부안 제출 이후 논의 전무
양경숙 "빨리 처리했다면 쿠팡 미국 안 갔을 것"
재벌 세습 비판·상법 개정 필요성 지적도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벤처기업 창업주에 차등의결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에는 여야 이견이 없지만 입법 우선순위에 밀려 관련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돼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폐기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는 차등의결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정부안·양경숙 민주당 의원안·이영 국민의힘 의원안으로 3건 제출돼있다. 산자위는 오는 22일 법안소위와 23일 전체회의를 열어 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84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정부안과 양경숙 의원안은 1주당 2개 이상 10개 이하의 의결권을, 이영 의원안은 1주당 2개 이상의 차등의결권 도입을 골자로 한다. 정부안에선 차등의결권 존속기간을 10년 범위로 하고, 창업주가 △복수의결권주식을 상속하거나 양도한 경우 △이사의 직을 상실한 경우 △증권시장에 상장한 경우에는 다시 보통주식으로 전환되도록 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산자위 중소벤처기업소위는 양경숙 의원안과 이영 의원안을 정부안 제출 뒤 병합 심사하기로 했고, 이후 12월 정부안이 제출됐다. 정부안 제출 이후엔 한 차례도 논의한 적이 없는 상태다. 여야와 정부 사이에 큰 이견이 없지만 다른 법안 우선순위에 밀려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여당의 2월 임시 국회 중점 처리 법안에도 차등의결권 제도는 포함되지 않았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차등의결권 제도는 기술력과 노하우가 있는 창업주를 상장할 때까지만이라도 보호하는 법”이라며 “빨리 처리됐더라면 쿠팡이 굳이 미국까지 가지 않고 한국에서 상장했을 수도 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 모두 반대가 없어서 쿠팡 사례를 계기로 속도를 낸다면 2월 국회에서도 처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언급했다. 이영 국민의힘 의원도 “조만간 다른 법안과 묶어서 통과되는 쪽으로 알고 있다”며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도입에)여야 이견은 없다”고 했다.

국회 산자위 전문위원 검토의견에선 ‘1주 당 1 의결권’의 주주평등 원리를 보장하는 상법을 개정하지 않고 개별법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부는 전체 기업이 아닌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에 한해서만 도입하는 것이므로 벤처기업육성법 개정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에선 차등의결권을 벤처기업에 한해 도입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재벌 세습에 악용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정부안에 대해 “벤처 기업의 성장기에는 복수의결권을 적용하고 상장 이후에는 소멸시키겠다는 것인데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투자자가 경영권을 전적으로 포기한 채 투자할 것인가”라며 “오히려 재벌 후계자가 벤처기업들을 창업하고, 비상장 벤처기업들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한 뒤 재벌 총수가 보유한 지주회사나 대표회사의 지분을 벤처기업들의 보통주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재벌 후계자가 손쉽게 세습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