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전셋값에 지친 세입자들이 철거 직전 아파트로 몰리고 있다. 바로 이주를 코 앞에 둔 재건축 아파트다. 철거가 시작되면 전세 계약 기간(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야 하지만, 인근 단지보다 전셋값이 싸다는 이유에서다. 전세매물이 사라지고 전셋값이 오르면서 주머니 사정이 충분하지 않은 신혼부부 등이 재건축 아파트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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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아파트의 전세계약 4건이 체결됐다.
해당 아파트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르면 내년 하반기 철거된다.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 시 ‘시기와 상관없이 철거가 이뤄지면 반드시 퇴거해야 한다’는 특약조건에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에도 전세 문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의 설명이다.
철거 직전 아파트에 세입자가 몰리는 이유는 바로 저렴한 전셋값 때문이다. 특히 전세매물이 귀해지고 인근 아파트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갈 곳 잃은 세입자들이 재건축 아파트 ‘전세살이’를 다짐하고 있다.
실제 해당 아파트 전셋값은 인근 단지에 비해 반값 수준이다. 지난 13일 계약이 체결된 반포주공 전용 84㎡ 아파트 전셋값은 5억3000만원이다. 인근 일반 아파트인 반포푸르지오(전용 84㎡·2000년 준공)의 전세 호가 11억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반포주공 인근 A공인은 “지난 주말에만 7개 팀이 전셋집을 보러 중개사 사무소에 방문했다”며 “대부분이 신혼부부였다”고 말했다.
◇강북 재건축 아파트도 마찬가지…전세 호가도 오르고 매물 귀해
반포주공1단지 뿐 아니라 강북권 재건축 아파트 사정도 비슷하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뒤 이주계획을 수립 중인 서울 내 재건축 사업장은 총 7곳이다. 해당 단지들은 이르면 내년부터 이주를 시작할 계획인데도 “1년이라도 살겠다”는 전세 난민이 몰리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따르면 성동구 옥수동 한남하이츠와 용산구 이촌동 삼익 아파트에서는 지난달 전세 계약이 각각 2건씩 이뤄졌다. 두 아파트는 내년 초 관리처분인가를 받을 계획으로, 이르면 내년 9월에 이주가 이뤄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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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익 아파트도 252가구 중 전세 매물은 단 2건에 불과하다. 삼익 아파트 인근 K공인은 “그래도 인근 아파트보다 시세가 저렴해 마음이 급한 세입자들은 ‘1년이라도 여기에서 살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셋값 상승세는 내년, 내후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입지 등을 고려할 때 매매가 대비 전셋값이 낮은 재건축 아파트로 세입자가 더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