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뒤 쫓겨나도 괜찮아”…철거 직전 아파트로 몰리는 '전세난민'

황현규 기자I 2020.10.22 06:05:41

재건축 반포주공1단지 내년 말 철거
인근 시세보다 전셋값 절반…전세 문의 이어져
재건축 아파트 전세 매물도 귀해지고 호가 올라
이르면 내년 말 이주할 서울 아파트 7곳

[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지금 결정 안하면 바로 (전세)매물 나가겠지만, 10개월도 못사고 이사갈 수 있어요. 빨리 결정하세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소)

비싼 전셋값에 지친 세입자들이 철거 직전 아파트로 몰리고 있다. 바로 이주를 코 앞에 둔 재건축 아파트다. 철거가 시작되면 전세 계약 기간(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야 하지만, 인근 단지보다 전셋값이 싸다는 이유에서다. 전세매물이 사라지고 전셋값이 오르면서 주머니 사정이 충분하지 않은 신혼부부 등이 재건축 아파트를 찾고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당장 싸게 살 곳이 필요해”…시세 반값 수준의 재건축 전셋값

2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아파트의 전세계약 4건이 체결됐다.

해당 아파트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르면 내년 하반기 철거된다.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 시 ‘시기와 상관없이 철거가 이뤄지면 반드시 퇴거해야 한다’는 특약조건에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에도 전세 문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의 설명이다.

철거 직전 아파트에 세입자가 몰리는 이유는 바로 저렴한 전셋값 때문이다. 특히 전세매물이 귀해지고 인근 아파트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갈 곳 잃은 세입자들이 재건축 아파트 ‘전세살이’를 다짐하고 있다.

실제 해당 아파트 전셋값은 인근 단지에 비해 반값 수준이다. 지난 13일 계약이 체결된 반포주공 전용 84㎡ 아파트 전셋값은 5억3000만원이다. 인근 일반 아파트인 반포푸르지오(전용 84㎡·2000년 준공)의 전세 호가 11억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반포주공 인근 A공인은 “지난 주말에만 7개 팀이 전셋집을 보러 중개사 사무소에 방문했다”며 “대부분이 신혼부부였다”고 말했다.

◇강북 재건축 아파트도 마찬가지…전세 호가도 오르고 매물 귀해

반포주공1단지 뿐 아니라 강북권 재건축 아파트 사정도 비슷하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뒤 이주계획을 수립 중인 서울 내 재건축 사업장은 총 7곳이다. 해당 단지들은 이르면 내년부터 이주를 시작할 계획인데도 “1년이라도 살겠다”는 전세 난민이 몰리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에 따르면 성동구 옥수동 한남하이츠와 용산구 이촌동 삼익 아파트에서는 지난달 전세 계약이 각각 2건씩 이뤄졌다. 두 아파트는 내년 초 관리처분인가를 받을 계획으로, 이르면 내년 9월에 이주가 이뤄질 계획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세 매물도 귀하다. 옥수동 한남하이츠 아파트는 577가구 중 전세매물이 단 2건이다. 이마저도 직전 거래가격보다 3000만원 오른 호가로 전세 시장에 나와 있다. 지난 8월 전용 88㎡짜리가 3억4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는데, 현재 호가는 3억7000만원이다. 호가는 올랐지만 여전히 인근 아파트에 비해 반값 수준이다. 바로 옆 단지 옥수 어울림더리버 전용 85㎡의 전셋값은 7억8000만원에서 8억원이다.

삼익 아파트도 252가구 중 전세 매물은 단 2건에 불과하다. 삼익 아파트 인근 K공인은 “그래도 인근 아파트보다 시세가 저렴해 마음이 급한 세입자들은 ‘1년이라도 여기에서 살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셋값 상승세는 내년, 내후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입지 등을 고려할 때 매매가 대비 전셋값이 낮은 재건축 아파트로 세입자가 더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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