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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속 죽음 死의 법칙

조선일보 기자I 2006.09.01 12:00:00

1. 제 명대로 못죽는다 (살인·자살비율 68%) 2. 당뇨병 안걸린다
3. 사고死·희귀병을 조심하라 4. 간·폐질환 문제없다

[조선일보 제공]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당뇨병. 한국인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1~4위의 사망 원인이다. 이 네가지 질환으로 죽는 사람(52.2%·이하 2004년 통계청 자료)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그러나 한국영화 속의 죽음은 현실과 전혀 다르다. 극중 묘사된 죽음 중에서 이 질환으로 죽는 경우는 단지 4.9%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등장 인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례는 대체 어떤 것들일까. 2005년 9월 1일부터 2006년 8월 31일까지, 국내 개봉된 한국영화 100편(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제외)에서 묘사된 죽음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엑스트라에 가까운 캐릭터의 죽음은 제외했다.
100편의 영화에서 드러나거나 중요하게 암시된 죽음은 모두 205건이었다. 평균적으로 영화 한 편당 2명은 죽는다는 얘기. 이 중 죽음이 한 차례 이상 그려진 영화는 67편이었고 그렇지 않은 작품은 33편이었다. 현실에선 암이 26.3%로 가장 큰 사망 원인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단연 살인이었다. 모두 117건으로, 영화 속에서 죽는 인물의 57%가 살해당했다. 공포나 액션처럼 등장인물의 죽음이 필수에 가까운 영화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론 사망 원인의 0.44%밖에 되지 않지만, 극적 전개를 위해 영화 속에서는 살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극중 살인 방식으로는 칼에 의한 경우가 가장 많아 모두 61건이었고, 이어 총(21건) 독극물(7건) 순으로 묘사됐다.


▲ 불치병을 앓는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들. 왼쪽부터‘연리지’‘파랑주의보’‘백만장자의 첫사랑’.

자살도 자주 그려져 11.2%로 2위였다. 실제(4.7%)의 두배가 넘는 확률이다. 교통사고가 살인·자살에 이어 6.8%로 극중 사망 원인 3위였다. 자살은 드라마 전개상 극의 절정을 빚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교통사고는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설명하는 밑그림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았다. 4위는 추락사(5.8%)로, 실제 사망 원인 1~4위와 영화 속 사망 원인 1~4위는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다. 살인과 자살을 포함, 극중 가장 많은 죽음을 묘사했던 영화는 모두 24건이 나오는 ‘예의없는 것들’이었다.



질병에 의한 사망이 영화 속에서 자주 묘사되지 않는 이유는 극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질병으로 죽는 경우가 필요하더라도 원발성폐고혈압(‘연리지’) 조로증(‘소년, 천국에 가다’) 에이즈(‘도마뱀’)처럼 특수한 불치병을 선호한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에서는 흥분하면 심장이 지나치게 뛰어 죽음에 이르는 ‘비후성 심근증’이란 희귀한 질병을 가진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역설적인 멜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병으로 죽는 경우만 따질 때, 암이 6건(2.9%)으로 가장 많긴 하지만 실제(26.3%)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인의 4대 사망 원인에 포함된 당뇨병으로 죽는 영화 속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실제와 달리, 영화 속에서는 심장 질환이 뇌혈관 질환보다 많이 묘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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