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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위안부 문제, 미국인은 몰라…고민하며 시로 썼죠"

장병호 기자I 2020.08.14 05:30:00

한국계 캐나다인 작가 에밀리 정민 윤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국내 출간
위안부 피해자 증언,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
"현대 여성이 겪는 아픔까지 돌아보길"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이 책이 반일민족주의적인 책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현대 여성이 겪는 다양한 폭력과 차별, 억압에 대한 목소리로 읽어주길 바랍니다.”

한국계 캐나다인 작가 에밀리 정민 윤(29)은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14일 국내에 출간되는 자신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윤 작가는 “책 제목에서 ‘우리 종족’은 곧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인간의 잔인함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작가 에밀리 정민 윤(사진=열림원).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은 윤 작가가 이민자 여성 시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전 세계 여성들이 겪는 아픔에 대해 쓴 시를 엮은 책이다. 2018년 미국에서 출간돼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인들에게 생소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윤 작가는 한국어 번역본 출간을 맞아 8월 초 내한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자가격리 중인 관계로 이날 기자들과의 만남은 실시간 화상 중계로 진행됐다. 윤 작가는 “내 시집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것은 꿈도 못 꿨다”며 기뻐했다.

윤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현지에서 주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뉴욕대에서 석사 과정을 다니며 유색 인종의 동료 시인들과 함께 우리의 훼손되거나 삭제되고 잊혀가는 이야기를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 많이 이야기했다”며 “그 과정에서 일본군 성노예 제도에 대한 논문을 준비했고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시집은 총 4개의 챕터로 나뉘어 35편의 시를 수록했다. 두 번째 챕터인 ‘증언’이 가장 눈길을 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시로 구성한 시 ‘증언들’을 담았다. “미군들이 내게 DDT를 너무 많이 뿌렸고 / 이가 전부 떨어져 나갔지 / 12월 2일이었다 / 나는 자궁을 잃었고 / 이제 일흔이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생생한 목소리는 윤 작가의 언어로 재현돼 실려 있다.

윤 작가는 “일종의 콜라주 기법으로 쓴 시”라며 “이미 텍스트로 존재하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시의 형태로 바꾸는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백을 많이 사용하고 시를 읽을 때도 더듬으며 읽도록 해 독자에게도 불편함이 전해지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그는 “단순한 재현은 폭력이 되기 쉽다고 생각해 내가 이 이야기를 써도 되는지를 질문했다”며 “미국인 친구들이 ‘한국어를 하고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대해 알고 시를 쓰는 여성인 네가 아니면 누가 이 시를 쓰겠느냐’고 말해줘 용기를 냈다”고 부연했다.

윤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전쟁에서의 폭력,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을 섬세한 문장의 시로 썼다. 한국어 번역은 소설가 한유주가 맡았으며 영어 원문도 함께 수록했다. 그는 “분노와 슬픔을 재료로 쓴 책이지만 그 뒤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사랑이 있다”며 “앞으로는 ‘셀프 케어’라는 관점에서 사랑을 말하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을 펴낸 한국계 캐나다인 작가 에밀리 정민 윤이 13일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념 행사에서 온라인 화상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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