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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산업은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초개인화 전략을 선도해 왔다. 고객의 선호와 행동을 정밀하게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은 고객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특히 고객의 실시간 행동을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접근은 유통 산업이 강점을 보여온 영역이다. 금융 산업 역시 고객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이와 같은 전략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물론 고객 식별과 관련한 데이터의 완결성 측면에서는 금융실명제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산업이 가장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미 카드 사용 내역과 디지털 접점 등을 통해 고객의 생활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다만 유통 산업이 고객의 행동 데이터를 중심으로 고객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방식은 금융권이 고객을 바라보는 관점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을 접목함으로써 금융 산업도 고객의 다양한 행동 맥락을 반영한 서비스 설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초개인화 전략의 정교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모든 금융기업이 동일 업권에서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 만큼 초개인화 전략을 실행함에 있어 고객에게 타 금융기관과 차별화한 인식으로 다가가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따른다. 이때 AI의 활용은 금융기업별 대고객 운영 모델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유사한 전략 아래에서도 고객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행이 어렵다. 실제로 IBM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금융 산업에서의 생성형 AI 도입률은 단 1년 만에 8%에서 78%로 급증했다. 이는 단순한 상담 자동화 도입을 넘어 문서 처리, 위험 분석, 고객응대, 자산관리 등 전사적 수준의 AI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고객의 디지털 수용도가 높은 한국 시장은 AI 기반 금융 혁신을 실현하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남아 있다. 또 다른 조사에서 AI를 통해 사업 모델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는 경영진은 85%에 달했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조직은 25% 미만에 그쳤다. 기술은 준비됐지만 조직의 문화와 리더십, 실행력에서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산업은 보다 유연하고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AI는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고객과의 관계를 재정의하며 산업의 경계를 재편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산업의 전략을 흡수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설계하는 데 AI를 적극 활용하는 글로벌 금융 기업들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했다. 고객 행동 분석, 실시간 모니터링, 예측 유지보수 등 타 산업의 기술과 전략이 금융의 다양한 영역에 접목되며 산업 간 융합이 가속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융합적 접근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금융 산업이 유통의 고객 중심 전략, 제조업의 예측 유지보수 모델, IT 산업의 플랫폼 전략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이를 AI로 구현해 낸다면 한국은 글로벌 금융 혁신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행하느냐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