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심지어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생활이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다. 카드는 기본, 간편 결제 시스템이 자리 잡으며 ‘현금 없는 사회’가 현실이 된 덕분이다. 동전과 지폐를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할 위험이 적어 편리해 보이지만, 예기치 못한 곳에서 현금이 필요할 때면 난감한 순간이 찾아온다. 특히 여행자들에겐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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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열흘간 이어지는 연휴, 민족 대이동을 앞두고 이데일리가 만난 시민들은 현금이 없어 당황한 기억을 털어놨다. 특히 현금 없는 버스가 도입되며 카드 이용이 불가능할 때 아예 버스를 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노민지(28)씨는 “잠깐 외출이라 지갑 없이 휴대폰만 챙겨 나왔는데 마침 버스를 타야 했다”며 “교통카드에 잔액이 없는데 현금으로만 충전 가능해 결국 버스로 20분인 거리를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의 버스 노선 394개 중 180개 노선이 이미 ‘현금 없는 버스’다. 45% 수준이라 카드가 없다면 정류장에 오는 버스 절반은 탈 수 없다는 의미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인천 등 일부 지자체 역시 현금 없는 버스 운영을 확대하는 추세다. 이들 버스 회사는 계좌이체 등 대안을 안내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불편이 남는다.
서울 시민도 이런 불편을 느끼는데, 서울로 여행을 온 외국인들은 당혹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만난 미국인 케이트(39)씨는 “카드로 지하철을 탈 수 없어서 교통카드를 사려는데 현금이 없다”며 “친구가 급하게 돈을 구하러 갔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카페나 음식점도 ‘현금 없는 매장’이 늘고 있다. 스타벅스는 2018년부터 일부 매장을 시작으로 현금 결제를 받지 않고 있으며, 무인 가게 키오스크도 카드나 간편 결제만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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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사회가 편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금 없는 버스나 매장이 좀 더 많은 수도권 지역에 비해 지방 소도시에 사는 시민들이 대표적이다. 강원 태백에 사는 50대 A씨는 “아직 태백이나 주변 지역을 다닐 때는 현금이 필요할 때가 많고 현금을 쓰는 게 자연스러운데 서울은 현금을 아예 받지 않아 당황한 적 있다”고 했다. 노년층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전광수(69)씨는 “커피숍에서 현금으로 주문하려 했더니 키오스크에 현금 넣는 입구가 없었다”고 했다.
현금 없는 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발표한 ‘2024년 지급수단·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현금 이용 비중은 15,9%에 그쳤다. 2013년 41.3%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제는 열 번 중 한두 번 정도만 현금을 쓰는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이 같은 과도기에서 조금이라도 덜 당황하려면 ‘지갑 속 5000원’ 정도는 챙겨다니는 게 현명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아직까지는 현금 결제가 많은 노점에서 붕어빵, 호떡 같은 간식을 사 먹기 위해 현금 몇천원은 챙겨다녀야 한다는 ‘밈(meme)’처럼 말이다. 대학생 고유진(26)씨는 “특히 겨울일수록 언제 어디서 붕어빵 노점을 마주칠지 모르니 현금 조금은 갖고 다니는 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