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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때 젊은이들이 내야 할 보험료가 얼마나 되느냐는 점이다. 지금 추산으로는 소득의 32%를 내야 한다. 이번 조정을 하지 않았다면 37%까지 올라갔겠지만 32%도 엄청난 부담이다.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어렵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지금의 20대 이하 세대가 가만히 있을까. 이렇게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건 연금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
18년 전인 2007년에는 보험료율 9%를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만 60%에서 40%로 단계적으로 내렸다. 논의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시작됐다. 주목할 부분은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이른바 ‘모수개혁’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서 이른바 ‘구조개혁’안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내놨다는 사실이다.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과 비례연금으로 이원화해 각각 소득대체율을 20%씩으로 한다는 것이다. 기초연금의 일부 재원은 세금으로 하고 소득비례연금은 낸 만큼 받게 해서 기금고갈 문제 자체가 없도록 했다. 그런데 이 구조개혁안은 우여곡절 끝에 파기되고 대신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는 모수개혁안과 함께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전액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제도를 별도로 신설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로부터 7년 뒤 박근혜 정부에서 이 기초노령연금은 폐기되고 국민연금의 가입기간과 연계하는 기초연금이 시작됐다.
문제는 18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지만 이번에 구조개혁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1대 국회 내내 특위를 구성해 싸웠고 22대 국회 들어서도 소득대체율을 놓고 논쟁만 했다. 과거 한나라당에 뿌리를 둔 정당인 국민의힘조차 구조개혁안을 내놓지 못했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과 같은 모수개혁으로는 안 된다는 걸 국민에게 설명하려는 의지와 능력 또한 부족했다.
민간보험에서는 수익비라는 개념이 보험상품이 지속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다. 평생 낸 보험료와 이를 기초로 평생 받게 되는 보험금(연금)의 현재가치를 비교하는 것으로 수익비가 1이 넘으면 그 보험회사는 그 상품을 팔면 손해라는 것이다. 즉, 연금과 같은 장기적인 상품은 수익비가 1이 넘으면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에도 ‘수익비’라는 개념이 있다. 국민연금 또한 이 수익비가 1보다 크면 그 제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연금의 수익비는 1.78에 달한다. 세대별 차이도 심하다. 베이비붐 세대는 2가 넘는다. 반면 2004년생부터는 1보다 떨어지고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0.5에도 못 미친다. 이번 조정안을 적용해도 40대 이상은 여전히 1이 넘지만 미래 세대는 1 이하로 계속 떨어진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연금개혁하면 ‘100인 100안’이 있는데, 국민은 도무지 뭐가 뭔지 어렵고 와닿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지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안은, 이른바 ‘한국개발연구원(KDI)안’으로 불리는 ‘신연금안’이다. 앞으로 내는 보험료는 개인 계정을 만들어 낸 만큼 받게 하고 지금까지 약속한 연금은 그대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금 고갈 문제 자체가 사라진다. 그동안 낸 보험료에 대해서는 약속된 연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여기서 필요한 ‘구연금’의 재정 부족분은 약 609조원, 국내총생산(GDP)의 8.4%에 해당한다. 이 재정 부족분은 구연금으로 적립한 기금에서 충당하고 구연금 기금의 고갈 후 13년 동안은 GDP의 1~2% 정도를 세금으로 보완하면 된다.
첫째, 기초연금의 대상을 전 국민으로 하면서 기초연금을 신연금 제도에 흡수할 수 있다. 지금처럼 기초연금의 재원은 세금으로 하되 신연금 제도에 연계해 연금 받는 수준에 따라 기초연금을 감액하도록 하면 노인 빈곤 문제 해소는 신연금 체제하에서도 가능해진다. 둘째, 이러한 신연금제도 모형은 문제가 심각한 공무원·사학·군인 연금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세금으로 재정 부족분을 충당하고 있는 이들 세 가지 연금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신연금 제도하에서는 연금 수급 연령의 조정도 재정 문제 없이 가능해진다. 낸 만큼 받는 상황이라 연금 개시 시점을 본인이 선택하도록 해도 되는 것이다.
지금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자동조정장치’를 거부하고 또 구조개혁을 위한 특위 구성도 거부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 국민 특히 그들이 표를 얻고자 하는 30대 이하 젊은 층을 버리는 것이다. 구조개혁만이 지금의 연금을 구하고 미래의 국민을 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숫자놀음으로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대충 넘어가려는 꼼수, 이제는 안 된다. 1988년 국민연금이 조금 내고 많이 받는 방식을 도입한 지 어언 40년이 다 돼간다. 지금까지는 쉬쉬하며 폭탄을 다음 세대로 떠넘겼지만 더는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연금개혁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