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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를 지내면 정말 비가 올까? [물에 관한 알쓸신잡]

이명철 기자I 2022.06.11 11:30:00

비를 내리는 인공강우 기술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던 조선 태종.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상왕 신분이 된 그는 오랜 가뭄으로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지고 역병마저 창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궁궐 후원에 단을 쌓고는 홀로 기우제를 지냅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지병이 깊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태종은 기우제를 지내면서 감정이 복받쳐 그간 자신의 악업을 절규하듯 토해내며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며칠간 밤낮으로 이어진 태종의 기우제는 절규를 넘어 광기에 가까워집니다.

기우제가 계속되던 어느 날 밤, 천둥이 치기 시작하면서 비가 쏟아집니다. 태종은 그 빗속에서 자신의 아버지인 이성계를 그리며 “아버지, 아버...”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둡니다.

종영한 지 20년도 넘게 지났지만 사극 최고의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는 KBS 대하사극 ‘용의 눈물’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날이 세종 4년인 1422년 음력 5월 10일이었습니다.

이후로도 태종의 기일인 음력 5월 10일이면 비가 내린다고 해 태종이 내리는 비라는 의미로 태종우라고 하였습니다. 드라마 제목처럼 ‘용의 눈물’에 비유한 것이지요. 지난 8일 전국에는 소나기가 있었습니다. 이날이 음력 5월 10일이었습니다. 태종우가 내린 걸까요?

과거 농경사회에서 비는 기상현상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가뭄으로 흉년이 들면 백성의 생존이 위협받는 건 물론이고 임금의 통치권도 위태로워졌습니다. 임금은 하늘이 내리고 비는 하늘이 관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재해는 모두 통치권자가 부덕한 탓이었습니다.

비를 기다리는 백성들 마음도 타들어 가지만 기우제를 지내는 통치권자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종이 비가 올 때까지 며칠에 걸쳐 기우제를 지냈던 것처럼 다른 나라의 기우제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입니다.

기우제는 하늘이 감복하도록 간절하게 정성을 다해 지내야 합니다. 하늘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 권한을 받은 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임금이 직접 제를 올렸다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왜 그랬을까요? 임금이 직접 지내는 기우제는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만일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로부터 버림받은 임금이라는 소문이 돌아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흉흉해질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우제에 대한 기록을 보면 신하를 보내 기우제를 지냈다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불가피하게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게 되면 반드시 비가 오는 기우제가 돼야 합니다. 비가 올 만한 날을 잡아 기우제를 시작해야 했고 일단 시작되면 비가 오기 전까지는 중단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기우제를 그만둘 명분도 마땅치 않고 비가 오기 전에 기우제를 그만두면 하늘의 버림을 받은 임금이 되는 것이니 뒷감당이 만만치 않았겠지요. 이렇게 한번 시작하면 비가 올 때까지 지내는 기우제를 인디언 기우제라고도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인디언 기우제라는 표현은 무슨 일이든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자기계발, 주식투자,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디언의 고향인 미국에서는 인디언 기우제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지극 정성으로 기우제를 지냈던 인디언에 대한 얘기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우리 정서와 만나면서 생긴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늘이 비를 관장한다고 믿었던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 제를 지내면서 비가 오기를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기상현상을 이해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기우제를 지내는 대신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구름에 화학물질을 뿌려 비가 오게 합니다.

바로 인공강우입니다. 인공강우가 우리에게 익숙해진 계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습니다. 베이징 기상당국은 올림픽 개막식 때 많은 양의 비가 올 것이라 예보했습니다.

비 때문에 개막식을 망칠 것을 우려한 중국 정부는 놀라운 조치를 취합니다. 인공강우 기술을 이용해 비구름이 경기장 근처로 오기 전에 인근 도시에서 미리 비를 쏟아내도록 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작전은 성공했고 덕분에 개막식은 성황리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인공강우. (이미지=최종수 위원)


인공강우는 구름씨앗이라고 하는 응결핵이 될 만한 물질을 구름 속에 뿌려 수증기를 물방울로 응결시키는 기술을 말합니다. 구름은 머리카락 굵기 4분의 1 정도의 아주 작은 수증기로 이뤄졌는데 2mm 정도의 빗방울이 되려면 구름입자 수백만 개가 모여야 합니다.

구름씨앗을 뿌려주면 이 물질이 응결핵이 되어 구름 속에 있는 수증기를 쉽게 물방울로 만듭니다. 비를 조절하는 인공강우 기술 덕분에 가뭄에 대한 고민을 해결한 것 같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도 많습니다.

우선 인공강우로 비를 내리기 위해서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가진 기술은 구름에서 비를 만드는 기술이지 구름을 만드는 마법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공강우로 특정 지역에 비를 내리면 원래 비가 내릴 지역은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지역 간 또는 국가 간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수백억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저수시설을 갖춘 지금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전국은 가뭄으로 타들어 갑니다. 인류의 과학기술 발달이 많은 걸 해결한 것 같지만 우리는 여전히 많은 부분을 자연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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