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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아파트 청약 광풍과 '로또 2등'

조철현 기자I 2015.11.08 10:50:37
[이데일리 조철현 사회부동산부장] 평소 알고 지내는 공인중개사가 얼마 전 필자에게 대뜸 꺼낸 말이다. “요즘은 대학생들도 모이면 (아파트) 분양이나 받아볼까 말해요. 최근 몇 년새 ‘만능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 바람이 불면서 부모들이 자식 이름으로 통장 하나씩은 만들어줬잖아요. 실제로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청약시장을 기웃거리는 젊은 애들이 적지 않아요.”

대형 건설회사 임원이 최근 사석에서 한 말은 더 가관이다. “요즘은 모델하우스도 보지 않고 일단 청약부터 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아파트 청약 당첨이 됐는데 모델하우스가 어딨냐는 전화까지 종종 걸려올 정도입니다.”

대한민국 곳곳이 아파트 청약 열기로 뜨겁다.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은 주말마다 방문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일부 단지에선 ‘떴다방’(이동식 부동산중개업소)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다. 웬만한 지역에선 분양만 하면 청약경쟁률이 수십대 1에서 수백대 1까지 치솟기 일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에 한파가 몰아친 이후 최대 호황기다.

내집 마련에 나서려는 실수요자의 마음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청약경쟁률이 높아질수록 당첨 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막차’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뒤늦게 청약통장을 챙기며 골드러시에 뛰어들려는 수요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심지어 모델하우스에 가보지도 않고 청약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묻지마 청약’이 따로 없다.

이쯤되면 청약시장을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요즘 청약시장이 과열된 데는 ‘웃돈’, 즉 단기 전매 차익을 노린 투자 수요(가수요)가 대거 가세한 측면이 강하다. 청약 광풍의 이면에는 ‘웃돈’ 기대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기 단지 분양권에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웃돈이 붙으면서 아파트 당첨만 되면 ‘로또 2등’ 정도는 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기도 한다.

청약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진 것도 가수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청약통장 가입 후 2년이 지나야 주어지던 서울·수도권 청약 1순위 자격 기준을 1년으로 줄였다. 수도권 민간 택지지구 분양 물량 전매제한 기간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됐다. 지방의 경우 청약통장 가입 후 6개월만 지나면 1순위 자격이 주어진다. 가족들의 통장을 돌리면 1년에 몇 번씩 청약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번 당첨되면 일정 기간 청약을 제한하는 재당첨 금지 규정도 없다. 정부가 엄청난 청약 허수를 만들어낸 것이다.

뭐든지 지나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청약 광풍의 피해는 실수요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막대한 전매 차익은 투기 세력이 챙기고 정작 살 집이 필요한 실수요자는 부풀려진 가격에 분양권을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주택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청약 열기를 틈 타 건설사들이 “지금이 기회”라며 마구잡이식으로 분양 물량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신규 분양물량은 49만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03년 35만5000가구 분양 이후 12년 만에 최대치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 앞으로 2~3년 뒤 입주 봇물에 따른 집값 하락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우리는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건설사들이 분양 물량을 쏟아내자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휩쓸려 청약시장에 뛰어든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고분양가라는 사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후 1년이 채 안돼 시장 상황이 급냉 기조로 바뀌자 청약 이상 과열에 따른 후유증도 가시화됐다. 미분양 물량이 급증했고, 계약 해지 요구도 빗발쳤다. 하우스푸어도 속출했다.

이제 연착륙을 준비해야 할 때다. 과열된 시장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주택 공급 과잉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청약 자격 제한이나 전매제한 강화와 같은 선제 조치를 검토할 만하다. 건설업계의 공급 속도 조절도 절실한 시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약 광풍에 휩쓸리지 않는 소비자들의 신중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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