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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정보기술(IT)업체 구글이 새로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월가 대표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서 영입했다. 이처럼 덩치가 커지고 현금보유가 늘어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제대로 된 재정 규율을 세우기 위해 월가에 구애하고 있다.
◇주가부진·M&A실패…구글, 월가 전문가에 `SOS`
구글은 24일(현지시간) 6년만에 자리를 떠나는 패트릭 피체트 CFO 후임으로 루스 포랫(57) 모건스탠리 CFO를 영입하기로 했다. 모건스탠리에서 25년간 잔뼈가 굵은 포랫 CFO는 오는 5월26일부터 미국 서부로 옮겨 구글로 출근하게 된다.
포랫 CFO는 월가에서 일하는 여성들 가운데 경력과 영향력면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구글의 이번 스카웃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선이 많다.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한 포랫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휘청거리던 모건스탠리의 재무책임자를 맡아 은행을 안정화시키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했다.
포랫 신임 CFO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고향인 캘리포니아에 돌아와 구글에 합류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모건스탠리와 스탠포드 이사회 멤버로 있으면서 IT가 우리 일상을 얼마나 윤택하게 해주는지 직접 체험했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구글의 포랫 CFO 영입은 최근 경쟁사들에 비해 부진한 주가를 끌어올리고 늘어나고 있는 현금보유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고민의 산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글의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은 41% 증가해 페이스북(34%)과 애플(38%)보다 높았지만, 주가는 올들어 지금까지 0.3% 하락하며 각각 33%, 64% 급등한 페이스북과 애플에 한참 뒤쳐지고 있다. 현재 구글의 현금보유량은 675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최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닷컴 등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신규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서 오랜 금융권 경력을 가진 인물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도 풀이된다. 전임자인 피체트 역시 CFO로 재직하는 동안 32억달러를 투자해 네스트랩스를 인수했지만, 124억달러라는 회사 창사이래 최대 규모의 M&A였던 모토로라 모빌리티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채 레노보에 되파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콜린 길리스 BGC파트너스 애널리스트는 “커다란 사업 아이디어들을 지닌 많은 임직원을 가진 구글로서는 재정 규율을 더 엄격하게 해야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며 “새로운 CFO는 회사 지출을 합리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정규율 필요해진 IT기업…안전한 일자리 찾는 월가
이같은 구글의 행보는 이미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중 하나인 트위터는 최근 골드만삭스에서 기술 및 미디어, 통신분야 투자은행 업무를 총괄해온 앤서니 노토를 CFO로 영입했다. 지난해 스냅챗도 크레디트스위스 출신인 임란 칸을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스카웃했고, 모바일 결제업체인 스퀘어는 역시 골드만삭스 출신인 새라 프라이어를 CFO로 데리고 온 바 있다.
피보털리서치그룹 브라이언 위저 애널리스트는 “IT기업들이 월가 대형기관에서 경력을 쌓고 산업 지식이 풍부한 인사들을 채용하는 것은 존중받을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최근 일자리를 잃은 월가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실리콘밸리로 옮겨 창업 등에 나서는 경우도 흔하다.
헤드헌팅사인 에곤 젠더 인터내셔널에서 금융IT부문을 이끌고 있는 에릭 앤더슨 대표는 “투자은행(IB)쪽 인사들과 얘기를 해보면 10명 가운데 7명 정도는 IT쪽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자 하고 있다”며 “5년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전했다.
실제 미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북미에서 채권 브로커리지(중개)업무를 비롯해 금융업종 취업자수는 지난 2008년초에 비해 21만1500명 감소했다. 반면 소프트웨어 개발과 사이버보안 등 10년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일자리는 이 기간중 50만개 이상 늘어났다.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에 따르면 금융관련 스타트업이 현재 1만2000곳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