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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이데일리 신정은 기자] “우리는 단지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보장해 달라는 것입니다. 정의와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홍콩 경찰이 지난달 15일 민주화 시위대의 도심시위를 불법 도로점거로 규정하고 강제 해산하면서 ‘우산혁명’이 사실상 막을 내린 이후 한 달이 흘렀다. 기자는 경찰과 시위대 간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던 홍콩 애드미럴티(金鐘) 지하철역 시위 현장을 지난 18일 찾았다. 이곳은 홍콩 정부 청사 바로 앞으로, 매일 10만명이 거리를 가득 메웠던 우산혁명의 중심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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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시위…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홍콩 청년들
지난해 홍콩을 달군 민주화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지만, 시위는 외부인이 믿기 힘들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시위대는 자신들이 머문 곳의 쓰레기를 스스로 치웠고, 시민은 이들과 음식을 나눴다. 비폭력을 지향하는 노란색 리본을 달고 경찰의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으면서 ‘우산혁명’이란 별칭이 붙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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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홍콩 궁카이(公開)대학 재학생인 벤(21·남)과 같은 학교 선배이자 직장인인 게리(28·남)와 브래인(28·남)이 어두워진 주말 저녁 한적해진 이곳 시위대 텐트 앞에 모여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영향을 받은 중국 정부는 홍콩을 ‘돈 버는 곳’ 정도로 취급한다. 중국 정부가 싫지만, 홍콩 독립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며 “홍콩이 귀환될 당시 약속했던 헌법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법치주의 도시인 홍콩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민주화 시위의 시발점은 중국이 오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반중(反中) 인사를 후보군에서 배제하고 친(親)중국 인사만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제한하면서다. 이면에는 홍콩 미래에 대한 청년들의 불안감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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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 부자인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 역시 “홍콩 시위는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의 문제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시위 주도자들이 체포되는 모습에도 두렵지 않느냐는 기자에 질문에 이들은 “정의를 위한 일이고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 이 일이 옳다고 믿는다”며 “우리는 아직 시위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시위 현장 한쪽에는 서너 명의 젊은이들이 노란 우산 위에 ‘Foever 87’이라는 프린트를 손수 그려놓고 있었다. ‘87’은 지난해 9월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쏜 최루탄 숫자다. 당시 시위대는 평화시위를 펼쳤음에도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강제진압에 나선 것이었다. ‘Foever 87’은 경찰의 폭력진압에 항의하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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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초반부터 참가했다는 제이미 첸(30·남)은 우산 위에 물감을 칠하며 “몸은 조금씩 지쳐도 정부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천 씨(32·여)는 “퇴근하고 이곳을 찾고 있다”며 “지난 몇 달간의 기억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17세 한 여학생은 페이스북을 통해 홍콩 시위를 주도했던 홍콩전상학생연회(학련) 레이터 셤 부비서장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했다.
일반 시민의 발길도 끊어지지 않았다.
길을 지나가던 직장인 황 씨(34·남)와 팡 씨(30·여) 커플은 시위텐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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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씨는 “학생들이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나도 조금만 더 어렸으면 참여 했을텐데 회사 때문에 이렇게 가끔 와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위대가 손수 만든 노란 종이우산은 남녀노소에게 인기상품이다. 그만큼 시민들이 민주화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아빠 손을 잡고 텐트를 지나던 8살인 왕지엔즐 군은 노란 우산을 하나 집어가더니 이내 돌아와 한 개를 더 가져갔다. 노란 우산의 뜻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왕 군은 “귀여운 노란색 우산 아닌가요?”라며 해맑은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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