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침체를 겪는 건설사를 비롯해 화학, 조선사들이 33회 신용평가전문가설문(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서 워스트레이팅 상위권을 차지했고, 코로나19 타격이 여전한 영화관을 비롯해 호텔, 면세, 유통사들도 상위권에 포함됐다.
33회 SRE에서 워스트레이팅 1위는 HDC(012630)와 HDC현대산업개발(294870)(HDC현산)이 차지했다. 이번에 워스트레이팅에 처음으로 포함됐으나 1위로 급부상했다. 2위인 롯데케미칼(011170)도 이번에 뉴페이스로 등장했으나 단숨에 2위에 올랐다. 3위는 31회와 32회 SRE에서 워스트레이팅 1위를 차지한 CJ CGV(079160)다.
워스트레이팅이란 기업별 신용등급 수준의 적정성을 묻는 항목으로 회사채를 분석하고 운용하는 시장전문가들이 기업 펀더멘털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신용등급을 가진 기업이 어디인지 응답하는 것이다. 2005년 시작한 SRE는 그동안 신용평가사가 부여한 신용등급 거품(등급 쇼핑)을 지적했고 STX, 동양, 금호, 웅진, 대한전선, 한진해운, 현대상선(현 HMM) 등 많은 기업의 신용위험을 선제적으로 경고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당기간 ‘워스트레이팅’ 기업은 ‘신용등급 고평가’ 기업으로 여겨졌지만, 2016년 24회 SRE부터는 등급의 적정성과 함께 등급 방향성도 함께 묻고 있다. 작년 9월 말 신용평가 3사 평균 등급상하향배율(업다운레이쇼)은 1.06배(단순평균)에서 지난 9월 말 2.13배로 높아진 상황이다.
HDC와 HDC현산은 33회 SRE에서 총 203명 가운데 52명(25.6%)이 현재 신용등급이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고, 워스트레이팅에 포함되자마자 1위를 기록했다. 이들 가운데 50명이 현재 등급 대비 하향 조정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향 조정 응답자를 직군별로 보면 크레딧 애널리스트(CA)가 21명, 비CA가 29명으로 집계됐다. 등급 상향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소수응답자 2명은 비CA로 나타났다.
이미 올해 상·하반기 중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두 기업의 신용등급을 ‘A+’에서 ‘A0’로 하향 조정한 상태임에도 등급을 더 내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이는 HDC와 HDC현산이 잇따른 사고 발생으로 사업 경쟁력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광주 학동 철거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해 17명(9명 사망·8명 부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올해 1월 광주 화정동에서도 신축 아파트 구조물과 외벽이 붕괴돼 작업자 6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학동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영업이 정지될 가능성도 리스크로 남아있다. 지난 3월 서울시는 학동 붕괴사고에서 하수급인 관리의무 위반행위와 부실시공 문제에 책임을 물어 각각 8개월씩 총 1년 4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HDC현산 측은 하수급인 관리 위반 처분은 과징금 4억원을 납부하는 방법으로 대체했다. 부실시공으로 인한 8개월간의 영업정지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에 나섰다. 가처분 신청과 취소소송을 제기해 리스크가 한동안 유예된 상태다. 여기에 아직 결정되지 않은 화정동 붕괴 사고와 관련된 행정 처분도 추가로 대응해야 할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33회 SRE에서 총 203명 가운데 50명(24.6%)이 등급이 적정하지 않다고 답하면서 2위에 올랐다. 응답자별로 50명 가운데 44명이 현재보다 롯데케미칼의 등급이 떨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그중 CA는 20명 가운데 19명이, 비CA는 30명 가운데 25명이 등급 하향에 표를 던졌다. 등급을 올려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CA 1명과 비CA 5명에 불과했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난 10월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3%를 2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는 계약금 2700억원을 납부한 상태로 내년 2월까지 거래를 마쳐야 한다. SRE 자문위원은 “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면서 배터리 소재 관련 투자 등 자금 소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지금 석유화학 업황도 부정적일뿐더러 시장에서는 NICE신평 등의 등급 액션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롯데케미칼의 신용 등급은 ‘AA+’이며, 등급 전망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NICE신평은 롯데케미칼의 공시 직후 당사뿐만 아니라 롯데지주의 재무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신용등급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등재했다.
특히 롯데케미칼이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계열사인 롯데건설이 대규모 개발 사업에 따른 자금난을 겪자 약 6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긴급 수혈해줬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의 지분 43.79%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지난달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참여해 875억원을 출자하는 데 이어 5000억원을 3개월간 연 6.39% 이율로 빌려주는 금전대여 계약을 체결했다.
CJ CGV는 33회 SRE에서 총 203명 가운데 48명(23.6%)이 등급이 적정하지 않다고 답하면서 워스트레이팅 3위에 올랐다. 응답자별로 보면 48명 가운데 현재보다 등급이 올라가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비 CA 7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3명의 비CA들은 등급이 내려가야 한다고 답했고, CA들은 18명 응답자 전원이 등급 하향에 표를 던졌다.
SRE자문위원은 “영화관으로 관객들이 돌아왔다고 해서 CJ CGV 영업이익률이 급격하게 상승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된다”며 “지난 2년간 제대로 된 영업을 하지 못하면서 재무제표가 나빠졌고 이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J CGV는 올해 2분기 별도 기준 8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전년 동기 대비 흑자로 돌아섰다. 5월부터 국내 극장업이 빠르게 호전되고 있어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4월 312만명 수준이었던 국내 관객 수는 5월에 1456만명으로 급격히 뛰었다. 이는 ‘범죄도시2’(개봉 5월 18일)가 코로나 이후 첫 1000만관객(1269만명)을 달성하면서다.
하지만 연결 기준으로는 16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대부분 국가는 일상 회복 국면으로 전환돼 매출 회복이 나타나고 있지만, 해외실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우 주요 도시들의 전면·부분 봉쇄가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어 연결 기준 실적 회복에 제약으로 작용했다. 올해 2분기 중국 지역에서 283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33회 SRE에서는 워스트레이팅 40개 기업 가운데 8개사가 신규로 편입됐다. 32회에 5개사가 새로 편입된 것과 비교하면 소폭 늘어난 수치다. 다만 32회에서는 코로나19 수혜를 입은 게임을 비롯한 바이오 기업들이 등장했다면, 33회에서는 경기침체로 타격을 입은 건설과 화학 기업들이 등장했다.
특히 금융과 캐피탈사도 상위권에 올랐다. 오케이캐피탈의 경우 최근 급격한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산건전성에 비상이 걸렸다. 부동산 호황기를 맞아 캐피탈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비중을 늘려왔는데,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크레딧 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지면서 자금 회수 가능성도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오케이캐피탈은 33회 SRE에서 워스트레이팅 40개 가운데 신규 진입한 동시에 5위를 기록했다. 응답자 총 203명 중 30명(14.8%)으로부터 현 등급이 적정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응답자별로 살펴보면 CA는 11명 전원 등급을 낮춰야 한다고 답했고, 비CA는 19명 중 18명이 등급을 하향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SRE 자문위원은 “캐피탈사 자체가 자산 건전성이 좋지 않으며, 특히 A- 등급의 캐피탈사를 보면 자산 불확실성이 크다”며 “최근 부동산 관련한 기업금융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유동성 리스크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도 올해 33회 SRE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고 7위에 랭크됐다. 응답자 24명(11.8%) 가운데 20명이 하락에 표를 던졌다. 한국씨티은행은 신용등급 ‘AAA0’에 ‘부정적’ 전망을 달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금융 사업의 단계적 폐지에 따라 은행의 여수신 기반 약화와 시장지위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2021년 10월 22일 한국씨티은행은 이사회 결의를 통해 소비자금융 사업부문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고, 2022년 2월 15일부터 모든 소비자금융 상품에 대한 신규 가입이 중단됐다. 영업정지 대상 부문은 개인고객 대상 여·수신, 신용카드, 자산관리(투자상품, 보험, 신탁) 등 전체 소비자금융 사업이다.
넷마블(251270)의 경우 응답자 전원이 하향에 표를 던졌다. 넷마블은 33회 SRE에서 총 203명 가운데 33명(16.3%)이 신용등급이 적절치 않다고 답했고 워스트레이팅 4위에 올랐다. 직군별로는 CA는 15명(23.8%)이, 비CA는 18명(12.9%)이 등급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NICE신평은 수익성 악화를 사유로 지난 6월 넷마블의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하향 조정한 상태다. 같은 달 등급평가를 진행한 한기평은 신용등급 전망만 한 단계 하향 조정해 ‘AA-(부정적)’를 유지하고 있다.
넷마블은 지난해 단행한 글로벌 스핀엑스 인수 여파에 현재 수익성과 재무구조가 모두 악화되는 추세다. 넷마블은 지난 2021년 10월 총 2조6000억원 가량의 스핀엑스 지분을 인수했다. 새로운 현금 창출 수단으로 삼겠다는 목표였지만, 인수 자금 중 1조6000억원 이상을 달러화 대출을 받아 부담이 상당했다. 인수 전 40%가 채 안 됐던 넷마블의 부채비율은 지난 상반기 기준 76%대를 찍었다.
호텔롯데는 33회 SRE에서 총 203명의 응답자 가운데 18명(8.9%)으로부터 워스트레이팅으로 평가받아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CA 7명과 비CA 11명 전원 호텔롯데의 등급을 하향해야 한다고 봤다.
현재 호텔롯데의 신용등급은 ‘AA-’이고, 등급 전망은 ‘안정적’이다. 호텔롯데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적 불확실성으로 2020년 말 ‘AA0’에서 ‘AA-’로 떨어졌다.
호텔롯데의 연결 기준 2020년 영업손실은 4976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로 돌아섰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백신접종, 코로나19에 대한 소비자들의 적응 등에 따른 호텔·면세 수요 회복, 공항 면세점 임차료 감면 등 정부의 지원정책을 통해 적자 규모는 줄어 261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다만 높은 고객유치비용이 소요되는 중국 대리구매상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고, 판촉 경쟁이 심화된 결과 2022년 들어서도 호텔롯데의 적자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호텔롯데의 연결 영업손실은 1626억원 수준이다.
롯데건설이 주주 대상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 여기에 호텔롯데가 포함되면서 부정적 인식도 커졌다. 지난 10월 롯데건설은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 등의 주주사를 대상으로 2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외에 은행권 등의 일반대출과 담보 차입 등 1조원 이상의 자금조달도 추진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워스트레이팅 후보군은 ‘AAA~BBB-’ 사이 투자적격등급을 보유한 기업 가운데 40개사를 선정한다. 후보군 선정은 직전 설문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한 기업(계열)은 추이를 살펴보기 위해 유지한다. 자문위원단 의견을 취합해 △발행규모가 일정수준 이상이거나 △시장의 관심이 큰 기업 △최근 등급 변동이 있었거나 평가사간 등급이 다른 기업 △채권 수익률(MIR)과 신용등급간 괴리가 있는 기업 위주로 추린다.
SRE 설문에서는 40개 후보군 가운데 응답자별로 5개 이내에서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한 기업에 한해 등급 방향을 추가로 표기한다.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 하향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에 각각 표기하는 방식이다. 평가사별 등급이 다른 스플릿 기업의 경우 높은 등급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면 ▲, 낮은 등급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면 ▼를 선택하면 된다.
이번 설문에 새롭게 포함된 후보군은 △HDC·HDC현산 △롯데케미칼 △SK실트론 △한국씨티은행 △한화건설 △넥센타이어(002350) △오케이캐피탈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등 8개사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3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