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KAI와 한화시스템의 소송전은 의아하게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헌법 제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여, 직업선택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AI가 한화시스템과 A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다. 부정경쟁방지법은 ‘타인의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를 방지하여 건전한 거래질서를 유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부정경쟁방지법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회사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구축한 영업비밀을 별다른 노력없이 핵심인력의 스카우트를 통해 사용하는, 이른바 무임승차를 막기 위한 보호장치를 규정하고 있다. KAI는 퇴사한 직원이 한화시스템에서 취업함으로써 자사가 보유한 영업비밀이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기에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언론보도에 따르면 KAI는 ‘전 직원이 퇴사할 당시 2년간의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하였으나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화시스템은 ‘스카우트로 채용한 것이 아닌 공개채용이고, 무엇보다 사업영역이 겹치지 않기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즉, 이번 소송은 KAI와 A씨가 체결한 경업금지약정이 유효한지를 두고 다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보통 경업금지약정은 직원이 퇴사 후 일정기간 동안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경쟁 지역에서의 취업, 창업 등의 활동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만일 근로자가 이러한 약정을 어기게 되면 기업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거나 업무상 배임죄 등의 혐의로 고소할 수도 있다.
그런데 경업금지약정은 앞서 설명한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지나칠 경우, 약정 자체가 무효화 될 수 있다.
대법원은 “직업선택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기 때문에 근로관계나 이와 유사한 계약 관계 종료 후 사업주의 영업부류에 속한 거래를 하거나 동종업무에 종사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등 경업금지약정을 한 경우, 그 약정은 사업주의 영업비밀이나 노하우, 고객관계 등 경업금지에 의하여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업주의 이익이 존재하며 경업 제한의 기간과 지역 및 대상 직종, 그 대가의 제공 여부, 근로자나 이와 유사한 지위에 있던 자의 계약 종료 전 지위 및 계약 종료 경위, 그 밖의 공공의 이익 등 관련 사정을 종합하여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한 합리적인 제한으로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유효하다”는 입장을 공고히 한 바 있다(2009다82244 판결 등).
나아가 경업금지약정의 효력을 다툴 때에는 사업주가 그 제반 사정을 주장, 증명할 책임이 있다.
만약 이번 소송에서 KAI와 A씨가 체결한 경업금지약정이 무효로 인정되면 영업비밀침해금지가처분 역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러한 다툼은 어디까지나 민사상 책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더라도 영업비밀침해(부정경쟁방지법), 업무상배임죄(형법)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를 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첨단기술을 다루는 산업군일수록 이와 같은 소송은 끊임없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기업은 근로계약서를 체결할 시점부터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이 사건의 추이가 주목된다.
*기고 내용은 이데일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