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승희가 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DAC artist) 국악창작자로 선정된 배경에는 ‘입과손스튜디오’에서 작가로 작창자로 꾸준히 쌓은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승희는 DAC 아티스트로 선정된 후 3년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몽중인’ 연작을 만들었다. 이승희는 ‘꿈’을 매개로 ‘춘향가’를 재해석했다. 춘향의 꿈에서 향단의 꿈으로, 고전의 삶에서 현실의 삶으로, 시공간을 이동하는 과정을 작품화했다. 첫해에는 춘향의 내면을 다뤘는데, ‘춘향’ 중심으로 사고를 하다가 그의 곁에 있는 향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통판소리 ‘춘향가’에서 향단의 비중이 거의 없다. ‘몽중인’은 향단의 존재를 끄집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밀리지 않는 사랑을 담고 있고, ‘햄릿’에 필적할 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춘향전’을 ‘몽중인’으로 재구성하면서 이승희가 향단이를 지금 우리가 사는 곳과 비슷한 시대로 오도록 설정한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극은 관객들로 하여금 ‘춘향이의 그네를 밀기만 하던 그녀가 만약 그네에 오르면 기분이 어떨까? 그게 가당한 일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 더욱 극 안으로 끌어당겼고, 마지막에 향단이가 그네를 타는 장면에서는 통쾌함을 선사했다.
이승희의 ‘몽중인’은 시대에 억눌린 인물들을 동시대 감각으로 불러왔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그들의 자아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선택해 나아가는 모습을 향단이를 통해 보여줬다. 판소리는 옛것이고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지만 자아가 없는 향단이와 같이 전통 판소리 사설 속에는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와 시선이 존재했다. 향단에게 투영된 인물에는 노동과 인권 부분에 대한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2020년 도시에 살게 된 향단이는 직장과 카페를 무대로 일을 한다. 출근 전 청소용역을 맡은 ‘향단’의 ‘쓸고 닦고 비우고’는 세련미의 음악으로 귀에 착착 감긴다. “그린티프라푸치노에 자바칩 추가로 같이 갈아주시고, 통자바는 따로 토핑으로 올려주세요. 시럽은 2번 펌프…”라며 커피를 주문하는 장면은 관객들을 숨통 트이게 하는 웃음 포인트로 희극적 요소지만,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의 현장을 고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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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인’의 서사의 완성은 이승희와 이연주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졌다. 하나의 이야기를 이원화하여 판소리계 소설(이연주)과 판소리계 사설(이승희)로 작업을 진행하여 ‘판소리에에 적합한 이야기 창작’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도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승희는 판소리 창본 구성과 작창을 했고, 무대 위의 배우로서 소리와 연기로 2020년 오늘을 살아가는 향단에게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했다. 판소리계 소설을 담당한 이연주는 ‘꿈’ ‘언니’ ‘그네’의 중요한 키워드를 통해 극을 관통하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이승희는 ‘몽중인’을 통해 판소리 사설의 작가로서의 구성 능력과 작곡가로서의 작창, 그리고 소리꾼으로서 배우 이승희의 역량이 얼마나 출중한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고전이 위대한 것은 바로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를 담고 있어 수많은 해석과 재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승희의 ‘몽중인’으로 2020년의 향단을 처음 만나게 된 것도 판소리라는 긴 이야기의 힘과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악계의 흐름은 연주자들이 직접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거대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실연자이며 동시에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작가로서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는 젊은 국악인 중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부분은 판소리이고, 이러한 흐름의 선두그룹에 이승희가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증명했다. 소리꾼 이승희가 하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고, 완성도 면에서도 출중했다. 소외됐던 인물인 향단에게 집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참신했으며, 시대를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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