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 생각에 거래소 전전…나는 '가상화폐 중독자'입니다

김성훈 기자I 2018.01.26 06:30:00

정부 고강도 규제에 ''버티겠다''던 2030도 초조
''본전 잃고 못 떠나''…초단기투자·해외시장 노크도
"손해 크면 보상 심리 강해져…중독자 늘어날 것"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아직 아내한테 말하지 못했는데 큰일이네요…”

회사원 신모(33)씨는 며칠째 잠을 설쳤다. 가지고 있던 여윳돈 500만원을 가상화폐에 몽땅 투자했지만 2주 새 60% 가까이 떨어진 이후 오를 조짐을 보이지 않아서다. 한 달 월급 가까운 돈을 날리니 하루에도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얼마 전에는 가상화폐(암호화폐)로 돈을 번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말다툼까지 했다. ‘투자는 감각인데 둔하다’는 친구의 농담에 신씨가 발끈한 탓이었다.

신씨는 “더 떨어지기 전에 남은 돈을 빼야 할지 고민이다”면서도 “잃은 원금을 찾기 위해 다른 투자 경로를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에 보유한 현금을 쏟아 부은 2030세대들이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도 쉽사리 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손절매한 투자금으로 초단기 투자에 뛰어들거나 아예 해외 가상화폐 시장으로 원정을 떠난 이들도 있다. 잃어버린 원금을 찾아 거래소를 떠도는 ‘가상화폐 중독자’들이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에 자리한 한 가상화폐 거래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가상화폐 신규 투자 소식에도…시장 ‘냉랭’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 23일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방안을 담은 ‘가상화폐 거래관리 대책’을 발표했다.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는 기존 가상계좌를 전면 중단하고 은행의 실명 확인을 거친 계좌로 거래하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모든 가상화폐 거래자는 앞으로 은행에서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개설한 계좌를 거래소에 등록해야 한다. 거래금액이 하루 1000만원(일주일 2000만원) 넘는 돈을 거래한 경우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규제책이지만 기존 투자자들은 호재로 받아들였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 금지 대신 양성화를 택한 것으로 해석했다.

정부 규제에 가로막혀 있던 가상화폐 투자 재개가 다가오자 가상화폐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띨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하다. 그러나 가상화폐 시장은 이들의 기대와 달리 계속 하락세를 보일 뿐 좀처럼 상승 반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은행들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열기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오를 때까지 버티겠다’던 2030 ‘존버’ 투자자들도 서서히 백기를 드는 모습이다.

직장인 안모(32)씨는 “정부가 사실상 ‘거래소 폐지’라는 카드를 미리 꺼내놓고 추가 대책을 내놓는 상황이다 보니 앞선 투자자들처럼 가진 돈을 몽땅 투자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현장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본전 때까지 못 떠나…초단기 투자·해외 거래소 ‘기웃’

상황이 이렇자 가상화폐 투자로 본 손해를 메우기 위해 가상화폐 초단기투자(초단타)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도 생겨나고 있다.

대학원생 정모(30)씨는 가상화폐에 투자한 원금 300만원 가운데 절반을 날린 이후 남은 돈으로 초단기 투자에 뛰어들었다. 정씨는 “가상화폐 가운데 오르는 종목을 분 단위로 보고 있다가 돈을 넣은 뒤 5만원 정도 벌면 나온다”며 “분 단위로 사고팔다 보니 이전보다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참에 해외 가상화폐 시장으로 눈을 돌린 투자자들도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해외 거래소 이용법과 송금에 대한 문의와 답글이 잇따르고 있다.

종전까지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가 해외보다 20~30%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누렸지만 가격이 뚝 떨어진 상황에서 더는 손해 볼 게 없다는 게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생각이다. 중국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중국 정부 규제에도 불구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며 급성장하는 모습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상화폐로 낼 수익을 기대하고 거액을 투자했는데 큰 손해를 보니 떠나야겠다는 생각 대신 잃은 돈을 찾고 말겠다는 믿음이 점차 강해지는 것”이라며 “손실 규모가 클수록 보상 심리가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어 시장에 남아 차선책을 찾는 투자자들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폭락피해자시민모임, 통일한국당 등 관계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암호화폐 투자 시민연합 출범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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