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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 만약 인공지능에게 ‘마음은 무엇인가?’를 물어 본다면 ‘정보의 조각들을 엮는 패턴’이라고 답할 것이다. 구매를 예측해 미리 배송해놓는 쇼핑몰, 스스로 부족 식품을 주문하는 냉장고처럼 오늘날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기술의 결합은 우리 일상의 정보를 축적하고 패턴을 분석하여 당장은 물론 가까운 미래의 필요까지 사전에 관리해주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되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아바타’가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알아서 처리해준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변화의 요체가 바로 다양한 일상정보의 축적과 분석이라는 점에서 종이 문서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화하는 ‘문서 전자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종이문서의 전자화를 위해 1999년 전자문서법(당시 전자거래법)과 전자서명법을 제정해 전자문서의 생성·보관·유통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이용을 촉진시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결과 유엔(UN)의 전자정부 평가에서 3회(2010년 2012년 2014년)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2016년 기준 일일 인터넷뱅킹 결제규모가 42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매장에서 발급하는 영수증이나 각종 고지서, 약국 처방전 처럼 아직도 종이문서가 사용되는 등 우리사회 곳곳의 전자화가 상당히 미진한 실정이다. 졸업·성적·자격 등 증명서 경우, 여전히 종이 문서만을 원본으로 인정해 인쇄본 제출을 별도로 요구하고 있다. 작년 8월부터 서울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는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은 계약서 위변조 예방과 은행대출 금리우대는 물론, 실거래가 신고 및 임대차 계약의 확정일자가 관공서 방문 없이 온라인으로 자동처리 되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용률은 0.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전자문서화가 더딘 이유는 ‘손에 잡히는’ 익숙함과 관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선 실무자들이 ‘종이 문서가 진정한 문서’라는 인식과 관행을 고집하는 것도 원인이다. 더 늦기 전에 ‘종이문서’ 중심의 관행을 ‘전자문서’ 중심으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기본법에 해당하는 전자문서법의 개정을 통해 ‘전자 문서가 종이문서와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법률근거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상속·유언·보증 등 전자문서가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는 별도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보안 우려 불식, 이용간편화 등 이용자 중심의 이용환경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보안 우려 해소를 위해 문서의 중요도 별로 보안수준을 차등화하고, 모바일 위주 이용추세를 반영하여 이용편의성 높이고, 클라우드, 블록체인 같은 다양한 신기술로 이용자 선택권을 다변화시켜야 한다.
특히 공공분야가 선도적으로 전자문서화를 추진하여 관련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며 확산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파급효과와 비용절감이 큰 분야를 대상으로 한 플래그십(Flagship) 사업을 실시하여 국민의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질 당시, 아날로그적 방식에 더 집착했던 제품과 기업들은 쇠락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일례로 CD 플레이어의 시대가 저물고 MP3라는 디지털 음원이 출시됐을 때, 여전히 CD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데 골몰해 MD(Mini-Disk) 플레이어를 내어놓았던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미래 세상의 주도권은 정보를 누가 어떻게 더 많이 갖고, 더 빠르게 처리하며, 더 나은 가치로 창조해낼 것인가에 달렸다. ‘그간 이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기에도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며 정보의 보고(寶庫)인 ‘문서 전자화’를 지연시킨다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문을 스스로 닫는 우를 범하게 된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빠른 실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