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앞으로 주택 공급이 크게 줄어들 거예요. 얼마 남지 않은 알짜 물량입니다. 분양을 서두르세요.” 아파트 분양 홍보 마케팅 업체들이 신이 났다.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가 생겼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주택 공급량 조절 카드를 꺼냈다. 공공택지에 주택 지을 땅 공급을 줄여 아파트 분양 물량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5일 나온 가계부채 대책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주택 공급량 감소 대책 추진에 건설사들은 당장 남아 있는 올 하반기 분양사업은 큰 걱정을 안해도 될 판이다. 앞으로 분양할 땅이 줄어들면 새 아파트 공급도 줄어 분양가도 비싸지고, 집값도 오를 것이라고 보는 심리가 늘고 있어서다.
주택시장의 이러한 풍경은 2년 전에도 똑같이 재현된 적이 있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으로 내놓은 2014년 9·1 대책 이후다. 당시 정부는 택지촉진법을 폐지해 2017년까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대규모 공공택지 지정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집값 안정이나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동산시장을 살리기 위한 대책이었다. 이후 분양시장에 나온 신규 아파트는 날개 돋힌듯 팔려나갔고, 지난해 주택 거래량은 사상 최대치 기록을 경신했다.
가계부채 부실을 사전에 막겠다며 내놓은 이번 8·25 대책은 아이러니하게 내용이 9·1 대책과 비슷하다. 당시와 달리 이번엔 신규 분양을 줄여 가계부채 부실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장에선 정부 의도와 달리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신규 분양시장 열기는 더 달아오르고 있고, 기존 아파트라도 빨리 사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3%에 달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주택 공급 추가 확대는 답이 아니라는 것은 정부뿐 아니라 학계나 시장에서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주택 공급을 줄이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주택 공급량 조절 정책은 부동산시장을 움직이기 위한 정부의 전통적 수법이었다. 역대 정부는 수요 공급 원칙에 따라 집값이 많이 오르면 공급량을 늘려 집값 떨어트리기 정책을 썼고, 공급 물량 일시 과다로 미분양이 급증하면 주택 공급량 감소 정책을 내놨다. 공급 확대 정책에 대한 반성이 본격화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하지만 당시 정부도 보금자리주택 150만호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까지 풀어가면서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썼다.
현 정부 들어 생긴 변화가 있다면 공급 축소로 방향을 완전히 돌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방법이 적절한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우선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9·1 대책)도, 안정화를 위한 대책(8·25 대책)도 모두 공급 축소라는 똑같은 카드를 꺼냈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오히려 부작용만 걱정되는 상황이다. 공공택지 공급을 축소한다고 과연 2017~2018년 입주아파트 폭탄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올해 분양시장 열기로 입주 공급 과잉에 따른 시장 충격 기간만 연장시키는 꼴이 될까 우려된다.
정부 정책이 겉포장은 분명 공급 확대에서 축소로 바뀌었지만 속내도 달라졌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명박 정부 때도 민간아파트 공급 확대에 대한 반성이라며 보금자리주택 공급에 열을 올렸다. 현 정부도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은 안하겠다고 하면서 택지개발촉진법은 결국 폐지시키지 않고 있다. 또 전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용 땅을 뉴스테이(기업형 민간 임대주택)용으로 전환하고, 행복주택지구를 추가 지정하고 있다. 사실상 치적 쌓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바뀌는 주택시장에 맞춰 정부 정책도 모양뿐 아니라 속내까지 달라져야 시장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