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피플]로빈후드? 강도? 슈퍼 약탈한 고르디요 시장

안혜신 기자I 2012.08.23 09:20:44

생필품 약탈, 빈곤층 제공하며 ''스타''로 떠올라
자칭 공산주의자..투쟁 벌이다 일곱번 투옥되기도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위기의 시대에는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영국 전설 속 영웅 로빈후드가 활약했던 배경은 십자군 원정이 한창이던 11세기로 기나긴 전쟁때문에 민심은 흉흉했고 통제를 벗어난 관리의 부패는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그런데 유럽 재정위기 장기화와 이에 따른 영향으로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면서 이번에는 ‘현대판 로빈후드’가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서민을 위하겠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다소 튀는 행보는 포퓰리즘에 과도하게 기대고 있다는 지적이 나아고 있지만 경제위기와 맞물려 계속 이어지고 있다. [편집자주]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마리날레다는 인구 2600명인 작은 소도시다. 이 조용한 도시에 작은 소동이 일어난 것은 지난 7일. 소매업체 까르푸에 수 백명이 들이닥쳐 10여대 카트에 생필품을 잔뜩 실고 돈을 내지 않은 채 무단으로 계산대를 통과한 것이다. 이들은 강탈한 물건을 노숙자와 형편이 어려운 빈곤층에게 나눠줬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이 ‘슈퍼마켓 약탈’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이 도시를 34년째 통치하고 있는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59) 마리날레다 시장이다.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 마리날레다 시장
고르디요 시장은 극좌 정당 좌파연합(IU) 소속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의회 의원을 겸하고 있다. 역사학과 교수 출신으로 자칭 공산주의자로 유명하며 사무실에는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는 지난 1979년 마리날레다에서 실시한 첫 민선시장 선거에서 당선된 후 30년 넘게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마리날레다는 한 공작이 소유했던 땅을 점거하는 등 정부와 투쟁을 통해 얻어낸 곳에 가난한 이민노동자들로 이뤄진 350여 가구가 모여서 세워진 일종의 가족형 도시다. 그는 1980년부터 농민들을 위한 농경지를 얻기 위해 수시로 도로 봉쇄는 물론 인근 도시 말라가와 세비야의 건물과 공항을 점거하면서 무려 일 곱번이나 투옥된 적이 있다.

그러나 십 여년이 넘게 투쟁을 지속해 결국 땅을 얻어냈으며 이 곳에 공동 경작하고 소득을 나누는 협력농장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공동 소유 토지에 정부 지원금으로 주택을 지어 한달 15 유로(약 2만900원)만 내면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7월부터는 집단 농장을 건설하기 위해 국방부 소유 땅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과거 강경한 행적을 고스란히 이어갈 태세다. 슈퍼마켓에 이어 은행마저 점령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6일부터 500명의 지지자와 함께 안달루시아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호다르를 시작으로 수도 마드리드까지 약 3주로 예정된 가두시위를 진행 중이다.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치권 비판에도 고르디요 시장은 굴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감옥에 가는 것은 오히려 영광”이라며 “안달루시아에 있는 모든 은행과 슈퍼마켓을 점령하겠다”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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