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공] 46살 김경미씨. 경미씨는 매일 아침 두 딸과 택시운전을 하는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주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일을 하지만, 딸들이 회사를 다닌다는 느낌을 못 받을 정도로 집안일을 열심히 합니다. 때론 '무서운 엄마'지만, 고민상담도 많이 해주는 '친구같은 엄마'입니다. 그리고 그는 체포 영장이 발부된 '수배자'이기도 합니다.
4년 전 경미씨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직장을 다니겠다고 마음을 먹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대형할인매장의 계산원이 되었습니다.
"아, 나는 파리 목숨보다 못하구나"
계산대에 한번 서면 6시간을 일해야 쉴 수 있는 정도로 고된 일이었습니다. 오전 근무만 할 경우 경미씨의 월급통장에는 80만원대의 돈이 들어왔습니다.
경미씨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해고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열심히 성실히 일하면 계약이 이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비정규직보호법'이 통과되면서 그 희망은 곤두박질쳤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 싫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경미씨를 자른 것입니다.
두 딸과 남편을 집에 두고 홈에버 월드컵점 농성장을 8일째 지키고 있는 경미씨는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 진짜 나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존재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앙다물었습니다.
보통 주부였던 경미씨는 농성을 거치면서 "힘없는 사람은 진짜 '자본가의 칼날'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는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반드시 승리한다, 끝까지 투쟁한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 결사투쟁!"이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팔뚝질'도 능숙하게 합니다.
[엄마] "밥 한 끼 못 챙겨주고 배웅도 못해주고"
마침 7일에는 고등학생 1학년인 딸 수연이가 엄마를 보러 농성장을 찾았습니다. 언론에서만 농성장을 봤던 수연이는 '노조 분회장'인 엄마가 낯선 모양입니다. 무서운 농성장에서 본 경미씨는 집에서 보는 엄마랑 좀 달랐으니까요.
무엇보다 수연이는 '수배자'인 엄마가 걱정입니다. 처음에는 투쟁에 나서라고 말했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무겁고 사실 후회도 됩니다. 수연이는 "TV에서 뉴스를 보면 불안하다, 경찰이 오면…"이라면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경미씨는 그런 딸에게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천상 '엄마'인 경미씨는 "밥 한끼 못 챙겨주고, 학교갈 때 배웅하지 못하는 게 가슴아프다"면서 "그게 내 생활인데, 생활을 뒤로 하고 조합일을 하는 게 내 이기적인 생각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합니다.
남편에게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경미씨는 영상편지를 통해 "가정과 직장만 알고 다니다가 생존권을 찾겠다고 미친 듯이 노동조합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속상하겠지만 이해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문제지만, 나중에 딸인 수연이·수민이의 일도 될 수 있으니까 누군가 해야될 일이라고.
그래도 그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노조의 분회장입니다. 경미씨는 "한편으로는 이건 내가 꼭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기 때문에, 가족이 나중에 이해해줄 거란 생각을 하고 일단 여기에 전념하고 있다"며 말했습니다.
[딸] "엄마한테 투쟁하라고 시킨 것 후회도 되지만"
하지만, 경미씨가 따로 이해를 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수연이는 "엄마가 하는 일은 파업을 하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자기 권리를 찾는 일"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수연이는 "엄마가 끝까지 맡은 일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며 "집은 내가 지킬테니까 걱정하지 말고"라고 응원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연이의 씩씩한 응원은 힘차게 끝나지 않네요. 수연이는 "정말 정말 정말 많이 사랑해, 사랑해"라면서 눈물을 닦았습니다.
엄마의 말도 결국 "사랑한다"로 끝납니다. 경미씨는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라며 "엄마가 표현이 참 부족하다, 하지만 엄마 이 맘 알아줄 거 알어, 진짜 사랑해, 사랑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해"를 반복하는 경미씨 얼굴에 다시 미소가 도는 걸 보니, 딸 수연이의 '지지 방문'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