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초고령사회의 역습 (7)웰다잉
초고령사회 걸맞는 돌봄 체계와 문화적 변화 요구
정부 추진 '연명의료결정제도' 실효성 높이는 노력 필요
독거노인 죽음·장례 준비 위한 체계적 대비도 절실
치매환자 금융자산 관리 문제 심각..논의·제도마련 시급
[이데일리 이지현 이지은 기자] 송진아씨(65)는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권유하는 의료진에게 그는 “살 만큼 살았는데 6개월을 더 산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치료를 거부했다. 의사는 “환자의 선택이니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그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송 씨가 치료를 거부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 남편이 항암치료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 이별한 경험 때문이다. 송 씨는 “옆에서 병간호하며 전 과정을 지켜본 뒤로 남편처럼 병원에서 고통 속에 죽고 싶지 않았다”며 “다른 가족들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혼자 생을 마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그래픽=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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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지만 죽음에 대한 준비는 여전히 미완성 상태다. 초고령사회에 적합한 돌봄 체계와 문화적 인식 변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완치를 목표로 한 치료 중심의 의료체계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죽음 앞에 선 환자가 더이상 치료받지 않길 원하더라도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의 고통이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셈이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교수는 “삶의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죽음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임종과정에서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정책 실효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통해 생애 말기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률은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20만 여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독거노인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논의돼야 한다. 2023년 기준 1인가구는 782만가구인데 이 중 65세 이상 가구는 213만가구(27.3%)나 된다. 4명 중 1명 이상이 독거노인인 셈이다. 이들의 경우 경제적 안정과 죽음준비 프로그램이 부족해 장례 준비 외에는 체계적인 대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사진=코파일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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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상태에서 사전 준비를 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돼야 한다. 유언 작성, 장례식 계획, 재산 분배 등을 사전에 한다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에 따른 혼란을 줄일 수 있어서다. 특히 치매 환자의 금융자산 관리 문제는 심각하다. 치매로 의사 표현이 불가능해지면 금융자산이 동결되며 가족들이 간병비와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본은 ‘성년후견제도’와 ‘가족신탁’을 활성화해 치매 환자의 자산 관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관련 논의와 제도 마련이 더디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죽음에 대한 침묵을 깨고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행사할 수 있는 큰 틀에서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개인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연명의료 결정제도=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기 위한 제도로 담당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환자의 의사 확인을 통해 이행된다. 환자의 의사 확인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환자가족의 진술, 환자가족의 전원 합의 등을 통해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