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월가브리핑]연준 '긴축의 칼날' 대비할 시점 오고 있나

김정남 기자I 2021.03.19 08:04:14

"인플레 일시적" 파월 그렇게 강조했는데
시장은 반대로…국채금리 하루 만에 폭등
'인플레' 검색어 역대 최다…시장 변동성↑
연준 vs 시장…금리 인상 대비할 때 왔나
진짜 문제는 이미 인상 칼 뺀 다수 신흥국
'재앙' 될 재정 확대 부메랑까지 감안해야



<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시작부터 놀랐습니다. 하루 전인 17일 오후 2시(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경제전망을 보면서 말이지요. 연준이 이번달 내놓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석 달 전인 지난해 12월(4.2%)보다 무려 2.3%포인트 높인 6.5%였습니다. 수정경제전망의 취지가 최대한 실시간 흐름을 담아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을 업데이트하겠다는 건데요. 그럼에도 짧은 기간 이 정도로 바꾸는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정책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전망도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는 1%포인트 남짓 올린 5% 중후반대를 내놓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보기좋게 빗나간 겁니다. 높게는 7.3%를 찍은 위원도 있었습니다.

기자는 내년 전망치가 3.3%로 나왔다는 것도 눈이 갔습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6~8% 성장한 이듬해 3~4% 다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뛴다는 건 반짝 반등이 아니라 경기 확장 국면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FOMC가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연준 통화정책의 핵심인 PCE 인플레이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2.4% 전망치가 나왔는데, 이는 석 달 전 1.8%보다 0.6%포인트 상향 조정한 겁니다. FOMC는 실업률의 경우 올해 4.5%에 이어 내년 3.9%, 내후년 3.5%를 각각 찍었습니다. 내년부터는 사실상 완전 고용에 들어선다고 보는 것이지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6~1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CNBC)


◇시장은 파월의 말을 믿지 않는가

그래서 30분 뒤인 오후 2시30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을 더 기대했습니다. 전망 데이터가 미국 경제의 모든 걸 말해주고 있지요. 이전과 다른 언급이 나올까 집중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습니다. 파월 의장은 오히려 더 강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면모를 보였습니다.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슈퍼 비둘기’ 발언을 이어갔는데요. 핵심은 인플레이션이 확 튀어도 당분간 용인하겠다는 평균물가목표제(AIT)의 취지를 유독 강조했다는 겁니다. 그는 “올해 일어날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반등(a transitory rise in inflation)은 통화정책 방향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쉬운 말로 하면 ‘기준금리 인상은 매우 천천히 하겠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최소 2023년까지는 기준금리 올리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따라붙는 의문이 있겠지요. 인플레이션이 상승이 예상보다 너무 가팔라지면 어쩔 건데, 하는 겁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기자회견 전 공개한 경제전망에 나와 있는 수치가 그렇습니다. 파월 의장은 이에 대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상관관계가 약해진 건 오래됐다”고 했습니다. 예전처럼 실업률이 낮아지고 완전고용 상태에 다다르면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과거의 얘기일 뿐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기자는 파월 의장의 이 언급을 들으며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파월 의장이 줄기차게 고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다소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파월 의장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백신 보급과 재정 부양책 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시장과 인플레이션에서 더 빠른 진전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그런 진전이 일어나는지 봐야 한다”는 겁니다. 향후 전망이 아니라 실제 수치를 확인한 후 움직이겠다는 뜻입니다. 이 역시 곧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선제적인 대응이야말로 통화정책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숫자를 다 보고 정책을 한다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AIT라는 새로운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구축해놓고 시장을 설득하려는 파월 의장의 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럴 거면 경제전망은 왜 내놓는지, 연준의 공식 전망과 파월 의장의 발언 중 무엇을 더 믿어야 하는지 의문이 1차적으로 들었습니다. 아울러 오는 6월 또 경제전망과 점도표가 나올 텐데, 그건 믿어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파월 의장이 점도표를 폄훼하는 듯한 말을 했을 때가 사실상 혼돈의 절정이었고요. 통화정책을 2~3년 중기 시계로 한다는 건 중앙은행 존재의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재무부 등 정부부처와 중앙은행을 구분 짓는 기준입니다. 그런데 파월 의장은 지금 당장 이 순간을 기준으로 말한다고 기자는 느꼈습니다.

최근 한달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추이. (출처=CNBC)


◇미국 조기 금리 인상 대비해야 하나

어쨌든 시장은 기준금리를 매우 천천히 올리겠다는 파월 의장의 말에 환호했지요. 그러나 동시에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최근 파월 의장이 공개석상에서 발언을 할 때마다 시장은 춤을 추고 있습니다. 당일 시장의 흐름과 이튿날 시장의 흐름이 매우 달랐습니다. 연준과 시장의 시각차가 다른 건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게 점점 심화한다는 관측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이튿날인 18일 시장은 ‘파월 의장을 믿을 수 없다’며 들고 일어섰습니다. 국채시장부터 흔들렸는데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전날 1.641%에 마감했는데, 이날 장 초반 1.754%까지 치솟았습니다(국채가격 하락).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파월 의장이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지만, 국채시장 참가자들은 장기국채를 내다던진 것이지요. 연준 경제전망 수치를 보면 국채 투매는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국채금리가 계속 오를 텐데(국채가격이 계속 내릴 텐데) 많이 보유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돼 버렸으니까요. 파이퍼 샌들러의 크레이그 존슨 시장전략가는 “국채금리가 급등할 가능성이 여전히 주요 위험으로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악시오스 보도를 보면, 도이체방크 조사 결과 구글에서 ‘인플레이션’을 검색한 양은 2008년 검색 기록을 보관한 이래 최대라고 합니다.

주목할 건 5년물 이상 장기국채금리가 급등한 와중에 통화정책에 민감한 단기국채금리는 내렸다는 겁니다. 국채 5년물 금리는 장중 0.900%까지 상승했는데요. 전거래일과 비교해 0.12%포인트 가까이 급등했습니다. 하지만 3개월물 국채금리는 오히려 내렸습니다. 채권수익률곡선(일드커브)이 더 가팔라졌다는 건데요. 이건 시장 일각에서 돈을 계속 풀겠다는 연준을 믿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당장 올해 여름께 3~4% 이상 물가가 치솟고 성장률이 8% 가까이 뛰면 아무리 연준이라도 버티기 어렵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기준금리 인상이 앞당겨질 수 있음을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번 연준과 시장의 신경전은 ‘역대급’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둘 사이의 입장차가 두드러질수록 각 자산시장 변동성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수바드라 라자파 소시에테 제네랄 금리전략가는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사하면 시장은 그 몇 배 이상 가격에 반영할 것”이라며 “경제 전반에 훨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투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이지요.

최근 5거래일 미국 나스닥 지수 추이. (출처=구글)


◇벼랑 끝 몰린 대다수 신흥국 어쩌나

기자가 걱정하는 건 또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미국 경제만 떠올리면 염려할 게 없을 수 있습니다. 독보적인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든 정책 대응이 가능합니다.

중요한 건 경제 체력이 약한 많은 신흥국들입니다. 미국 금리가 급등하기 시작하면서 신흥국에서 자본이 빠져나오고 있다는 통계들이 많아졌습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주 중국, 러시아, 인도 등 30개 신흥국 주식과 채권에서 하루 평균 약 2억9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이 유출됐습니다. 주간 기준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미국 채권수익률이 높아지고 달러화 가치가 뛰면, 신흥국으로 풀린 돈이 회귀하는 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금리가 낮은 선진국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신흥국으로 이동해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의 매력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타이밍입니다. 신흥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 신흥국 경제는 코로나19의 늪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로빈 브룩스 II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는 여전히 회복 초기 단계”라며 “신흥국에서 자본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은 놀랄 말한 일”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2.00%에서 2.75%로 큰 폭 인상한 이와 직결돼 있습니다. 2015년 7월 이후 첫 인상입니다. 경제 상황이 말이 아닌데 누가 금리를 올리고 싶겠습니까.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급락하는데 따른 고육지책인 겁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플레이션 공포가 기준금리 인상을 부추겼다”고 썼습니다. 러시아, 터키, 인도 같은 거대 신흥국 역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른 시일 내 금리 인상 전망이 파다합니다.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코로나19 때 쏟아부었던 재정은 재앙이 될 게 분명합니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한국이라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원화 안정성과 국제금융계 위상 등을 볼 때 주요 기축통화국 같은 선진국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나마 미국이니까 파월 의장이 자신감을 보인 것이지, 요즘 신흥국들은 점점 벼랑 끝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파월 의장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가며 위기의 신흥국에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계 경제 상황은 썩 좋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투자하기 참 어려운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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