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올 것으로 짐작했지만 이렇게 빨리...”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둘러싸고 지난 6일 국회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벌어진 해프닝과 지난달 부산을 들렀을 때 필자가 목격한 도로변의 깃발 모습이 오버랩 되는 순간 다가온 느낌은 이랬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들엔 가덕도 신공항을 염원하는 문구가 선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부산 시민의 열망이 얼마나 뜨겁고, 공항 건설이 지역 경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솔직히 구석구석까지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가덕도 신공항이 대통령 선거 때마다 달콤한 선물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산 후 선거가 끝나면 사그라들기를 누차 반복했다는 점이다. ‘영남권 신공항’이라는 포장 속에 들어 있었지만 ‘가덕도’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거 공약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약속에도 후보지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2011년 백지화에 이어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나면서 없던 일로 됐을 뿐이다. 그리고는 더불어민주당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 경남과 울산에 승리 깃발을 꽂자 다시 연기를 내더니 이제 큰 불로 번진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희망 고문을 끝내겠다”며 운을 떼자 국회 교통위가 6일 적정성을 검토하는데 쓸 용역비라며 20억원의 예산을 내놓으라고 국토교통부를 다그친 것은 이 불이 맹렬한 기세로 타오를 것임을 알린 신호다.
가덕도 신공항이라는 ‘불’에 정치권이 기름을 부은 배경은 단연 내년 4월의 부산시장 보궐선거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 싸움이니 가덕도 건에 관해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김해신공항이 부적정으로 결론 나면 곧바로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하자”(민주당 김교흥 의원)“김해가 부적정이면 가덕도를 패스트 트랙에 태워달라”(국민의힘 이헌승 의원)며 앞다퉈 가덕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수십조 원이 들지도 모르는 사업이며 지킬 절차가 있다”며 속도 조절을 당부했을 정도면 구애 공세가 얼마나 뜨거울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선거가 중요하고 공항이 급하다고 해도 짚을 건 짚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을 요구하는 지자체와 정치인들의 주요 논리 중 하나는 김해신공항의 안전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은 김해신공항의 적정성을 재검증해야 한다고 요구해 지난해 말 국무총리실에 관련위원회가 설치 됐고, 조만간 검증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공항 관련으로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2016년 내린 평가에서 가덕도는 김해, 밀양에 밀려 꼴찌였지만 안전성만 걸고 넘어지면 결과를 뒤짚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계산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절차가 있다. 결격 사유가 생겼다고 1위 타이틀을 빼앗아 2위를 건너 뛰고 3위에게 바로 넘기는 경우는 스포츠에서도 보지 못한 일이다. 하물며 초대형 국책 사업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특정 지역을 정하고 검증용역 예산부터 달라는 것은 법과 절차를 무시하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김해신공항이 백지화된다면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 새 후보지를 선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국민 중에는 국가 백년대계 차원의 사업이 선거를 앞둔 시점에 쫓기듯 후보지를 바꿔야 할 이유에 동의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지 모른다.
가덕도 신공항에 목을 맨 정치인들의 속내를 국민과 유권자들이 모를 리 없다. 정치인들은 신공항을 표심 낚기의 미끼로 쓰려는 얄팍한 행태를 멈춰야 한다. 공항이 정치에 덮히고,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 피해는 결국 납세자인 국민에게 돌아온다.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전임 시장의 성추행 파문으로 치러지면서 267억여원의 국고를 낭비하게 된 사실을 감안하면 정치인들은 공항은 둘째 치고 용서부터 구하는 게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