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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는 영혼의 양식 채워주는 물과 공기"

김은비 기자I 2020.11.11 06:00:00

7년 만의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60여편의 시와 시를 쓴 계기 정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
"죽을때 후회없도록 가슴속의 시 써갈 것"

정호승(71) 시인이 10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비채) 출간 기념 간담회를 갖고 있다.(사진=김영사)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시는 우리 사회의 물과 공기와 같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혼의 양식을 챙겨먹으면서 살아가는 데 그런 양식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것이 시이기 때문입니다.”

정호승(71) 시인이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비채)로 돌아왔다. 국내 대표 서정 시인으로 꼽히는 정 시인은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찾고 용기와 희망을 노래하는 시들을 써왔다. 이번 산문집은 정호승의 시와 함께한 산문집으로 시인이 직접 가려 뽑은 시 60편과 그 시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정 시인은 10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출간 기념 간담회를 갖고 “마음속으로 항상 이 시를 쓸 때 이런 일, 계기가 있었다는 걸 산문으로 한번에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 책은 그런 생각의 결과다”라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로 등단 48주년을 맞이한 정 시인은 지금껏 총 13권의 시집과 1000여편의 시를 발표했다. 이번 산문집에는 그 중에서도 시를 쓰게 된 서사가 뚜렷한 시들을 중심으로 담았다. 정 시인은 “요즘 ‘시가 어렵다’, ‘시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시가 우리 삶에 어떤 보탬이 되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시를 쓰게 된 배경을 같이 읽으면 시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책 제목은 정 시인의 대표 시 ‘수선화에게’의 한 구절을 따왔다. 그는 “외로움의 문제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제 자신도 마찬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지만 사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움의 존재”라고 얘기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외롭지만 그걸 이해한다는 것 만으로도 외로움을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며 “그것을 이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시인 스스로 위안을 받은 시로는 2004년 발표한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에 실은 ‘산산조각’을 꼽았다. ‘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산산조각)라는 시구는 미래를 걱정하기 보단 오늘을 사는 힘을 줬다고 했다. 그는 “2000년 부처가 태어난 룸비니에서 흙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부처님 조각상을 사왔는데 이것이 부서지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며 “이내 ‘오지도 않은 미래를 가불해 걱정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는 법정 스님의 명언이 떠올랐다”고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작품 활동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시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저는 시가 아니고 시를 쓰는 사람일 뿐”이라며 “시가 저를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었다”고 했다. 여기에 ‘모성적 사랑’도 힘을 보탰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은 조건이 없으며 무한하고 절대적이다”며 “독자와 가족들이 주는 모성적 사랑을 통해 시인으로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정 시인은 죽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가슴속에 떠오르는 시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써내려가며 남은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쓸 시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와 인간이라는 존재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시”라고 설명했다.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결국 각 시대의 눈물을 닦아줄 시인은 계속 태어난다. 하지만 각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눈물은 스스로가 닦아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그는 “그동안 작업한 산문도 너무 많아서 이번 책은 반 정도만 정리한 것”이라며 “적당한 기회에 이번 책 같은 산문집을 한번 더 출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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