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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다주택자를 잡기 위해 양도세율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는 가운데 다주택자의 경우 양도세보다 증여세 부담이 더 낮은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금전적 여유가 있는 다주택자라면 집을 내놓기보단 물려주는 우회로를 택해 정부의 규제 칼날을 피해 갈 수 있단 지적이다. 양도세율 인상은 다주택자들의 계속 보유 혹은 증여를 부추기면서 매물잠김 현상을 강화해 역으로 양도세를 낮춰 거래를 늘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 다주택자들 “파느니 아들딸, 배우자에 넘겨 세금 아끼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기간이 지난달 말 끝나면서 현행 양도세율은 최고 62%다. 일반세율이 최고 42%에 2주택자 조정지역대상 내 주택을 팔면 10%포인트, 3주택 이상은 20%포인트 중과된다. 이에 비해 증여세율은 과세표준이 3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최고세율 50%가 매겨진다. 단순 비교해도 양도세 최고세율이 증여세율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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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보유해 유명해진 서초구 반포동 한신서래아파트(전용 46㎡)를 가진 서울 다주택자 B씨를 가정하면, 한신서래를 성인 자녀에 증여할 경우 팔 때보다 2억원 넘게 세금을 절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에 2억8000만원에 매입해 지금 시세(10억원)로 판다면 4억5000만원의 양도세를 물어야 한다. 이에 비해 성인 자녀에 물려주려면 2억1800만원의 증여세를 내면 된다. 우병탁 팀장은 “정부에서 계속 정조준하고 있는 다주택자는 그대로 갖고 있거나 팔거나 물려주는 방법 중에서 고민할 것”이라며 “세금을 비교해보면 팔지 않고 갖고 있거나 물려주는 쪽이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했다.
성인 자녀보다 더 세금을 더 아낄 수 있는 방법이 배우자 증여다. B씨의 경우 배우자에게 넘기면 증여세가 7000만원이 채 안 된다. 배우자 증여 시엔 증여가액에서 6억원을 기본공제한 뒤 세금을 매기는 까닭이다.
세무법인 다솔의 안수남 세무사는 “배우자에 증여하거나 둘 이상의 자녀에 공동명의로 증여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세금을 줄여 집을 넘기는 다주택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양도세 중과 유예 기간이던 지난 5월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3구의 증여 건수는 516건으로 전달보다 50% 이상 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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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 차단 위한 증여세 인상, 불가…양도세율 낮춰 매물 풀게 해야”
특수관계인 사이의 주택 증여 증가는 시장의 정상적인 매물을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증여를 통한 다주택자의 절세 통로를 막기 위해 증여세를 높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증여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이미 높아서다. 안수남 세무사는 “정부가 양도세율을 더 올리겠다고 하면 다주택자들은 편법 아닌 편법으로 증여를 더욱 활용하게 될 것”이라며 “이를 또 막겠다고 증여세율을 높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균형, 형평이 더 어긋나고 불법적 증여가 늘어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지난 20대 국회에선 증여세 최고세율을 60%로 올리는 내용의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정부의 목표대로 다주택자의 매물을 유도하기 위해선 세제 강화보단 완화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제 강화를 통해 징벌적으로 해소하려고 하니 다주택자 문제가 더 꼬이는 것”이라며 “양도세를 지금보다 더 낮춰서 증여보다 이익이 크도록 만들어줘야 매물잠김 현상이 풀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