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삼성전자가 최근 폴더블폰 신작 ‘갤럭시Z 플립’의 한정판 패키지인 ‘갤럭시Z 플립 톰브라운 에디션’의 추가 판매를 결정해 화제가 됐습니다. ‘기다렸다’며 반기는 반응이 있나 하면 ‘한정판을 왜 추가로 파냐’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공개 당시부터 삼성전자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애초 톰브라운 에디션은 정해진 수량(알려주진 않지만)만 ‘한 번에’ 판매하기로 기획된 제품이었습니다. 삼성이 예정에 없던 추가 판매를 결정하게 된 데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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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브라운 에디션 추가판매 사태 배경엔 악명 자자한 ‘매크로’
조금 생뚱맞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부연 설명을 하자면 사정은 이렇습니다. 판매개시 시간인 지난달 21일 자정을 앞두고 삼성닷컴은 과도한 트래픽이 몰리면서 로그인조차 되지 않는 등 오류를 일으켰고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구매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죠. 직접 구매 시도를 해봤던 사람으로서 한 시간 동안 로그인 과정만 반복했습니다.
톰브라운 에디션이 공개 직후부터 다자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명품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과 한정판이라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300만원에 육박하는 높은 가격과 폴더블폰이라는 제품 특성을 고려하면 삼성 홈페이지를 마비시킬 정도의 구매자가 몰리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지요.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폴더블폰의 판매량이 50만대였으니 말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날 삼성 홈페이지 서버를 다운시킨 원인이 리셀러(되팔이)를 중심으로 한 ‘매크로’(특정 작업을 반복하도록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개인들도 매크로 프로그램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구매를 간절히 원하는 실수요자들이 사용한 경우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소비자들의 구매 과정이 순탄치 못했고, 톰브라운 에디션의 독점 판매자인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책임감을 느끼고 추가 판매를 결정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추가 판매를 유례없는 온라인 추첨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더 이상의 추가 판매는 없다고 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비정상적’인 접근이 확인될 경우 법적인 처벌도 가능하다는 엄중한 경고도 덧붙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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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티켓 사재기부터 댓글조작·마스크사재기까지…매크로 막기 위해 기업들도 안간힘
매크로는 톰브라운 에디션 이전에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악명을 떨쳤는데요. 가장 최근을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대란이 벌어진 와중에 마스크 사재기에도 이용됐습니다. 온라인에서 매크로를 이용해 마스크를 대량으로 사재기해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되팔이 한 일당이 적발된 것이죠.
인기 연예인의 팬 미팅이나 공연 티켓 예매에서도 매크로를 이용한 ‘시장 교란’ 행위는 비일비재합니다. 기본적으로 팬층이 두텁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것도 있지만 ‘웃돈’을 노린 되팔이꾼들이 매크로를 이용하면서 예매는 경쟁이 아닌 전쟁이 됩니다. 서버에 과부하가 걸릴 뿐 더러, 정작 정직하게 클릭한 일반인들은 표를 구하기가 힘들어지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매크로가 애초 나쁜 의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자주 사용하는 여러개의 명령어를 묶어서 하나의 키 입력으로 일련의 단순 반복 동작을 편리하게 하거나, 복잡한 작업에서 실수를 덜기 위한 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문서 안의 같은 문자열을 찾아서 한꺼번에 변경할 때도 쓰입니다.
매크로가 대중에 악명을 떨친 건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입니다. 일명 ‘드루킹’ 일당이 댓글조작에 매크로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후에도 댓글조작은 물론 실시간 검색어 조작 등에 매크로가 이용된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졌습니다.
포털·음원·공연 기업들은 이같은 매크로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백방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로그인을 해야 댓글을 쓰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피(IP)주소를 기억하게 하는 등 방법을 써보지만 매크로 프로그램도 함께 진화하면서 이같은 견제를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총선 기간을 맞아 주요 포털은 아예 매크로를 통해 조작이 가능한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중단했고, 최근 한 음원 사이트도 실시간 차트를 없앤다고 발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