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2월 취임 1주년을 맞아 방송기자클럽 초청으로 열린 특별회견에서 “대통령으로 뽑았으면 앞으로 4년 제대로 하게 해 줄 것인지 못견뎌서 내려오게 할 것인지 국민이 분명하게 해 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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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둔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으로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 했다는 논란이 거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발언 자체가 사전선거운동 금지 규정에 위반되진 않는다`고 봤지만, 중립을 지켜줄 것을 권고했다. 선관위의 자제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면서 결국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이란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헌법재판소는 같은해 5월 14일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사건(2004헌나1)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파면 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이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주실 것을 호소드린다”며 “서로 분열하지 말고 역사와 국민 앞에서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란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정의당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박 전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했다. 선거권 없는 자의 선거운동 행위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255조 제1항 제2호를 위반했다는 취지였다. 거대 야당이 미래통합당을 의미하며 결국 선거권자들에게 미래통합당 후보자를 지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이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양동훈)에 배당하고 사건을 검토 중이다.
선거법 위반 관련 쟁점은 박 전 대통령의 편지 내용이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가 여부다.
선거법 위반으로 보는 쪽은 편지 내용이 사실상 선거운동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추상적인 표현을 썼지만 거대야당은 미래통합당을 뜻하고, 힘을 합쳐달라는 것은 미래통합당에 표를 몰아주라는 지지 선언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박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 자격 유무를 떠나 선거법에서 규정하는 선거운동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선거법 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선거운동은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를 위해 낙선 또는 당선 운동을 하는 건데 어떤 당을 이야기하는 건 선거운동이 아니라 정치활동”이라며 “특정 후보자를 위한 낙선이나 당선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정당에 대한 지지와 호소는 선거운동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180일 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반대하는 내용의 문서를 배부해서는 안 된다`는 선거법 93조 규정 역시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우편물이나 문건 등을 배부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편지를 공개하고 낭독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공안부장검사를 지낸 변호사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대형로펌 소속의 이 변호사는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 표명은 선거운동으로 보지 않고 있고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가 아니라 기소 자체가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공안통 출신의 다른 변호사도 “선거운동을 좁게 해석한 대법원 전원합체 판결(2015도11812)에 비춰봤을 때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국정농단 사건으로 아직 재판을 받는 처지에서 정치 개입 의도가 명백한 박 전 대통령의 행위가 매우 부적절하고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