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증권전문기자] 국내 상장기업들의 배당규모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상장사 배당금 총액은 한 해전에 비해 9% 정도 늘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 7.7%였던 전세계 기업은 물론 미국(6.3%), 아시아(8.6%) 지역 기업들의 배당금 증가율을 앞지르는 수준이다. 올해에는 결산배당 계획을 공시한 상장사 배당 총액이 작년보다 25% 이상 늘어났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배당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실적이 좋아진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실제 지난해 국내 상장사의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은 무려 51.5%에 이르러 미국(9.78%)과 일본(11.48%), 중국(24.14%), 인도(9.40%) 등을 크게 웃돌았다.
기업의 실질적 주인인 주주들에게 배분하는 몫이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주가가 고질적인 저평가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이같은 배당 확대는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배당금이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순이익에서 배당총액이 차지하는 비율인 배당성향을 놓고 보면 국내 배당액 상위 100개 상장사들의 올해 평균 배당성향은 18.18%로, 한 해 전의 21.97%에 비해 오히려 3%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이같은 배당성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데다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에 속한 국가들의 평균인 40%에 비해서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는 배당이 늘어나는 속도에 있다. 배당은 한 번 늘려두면 줄이기 어려운 경향이 강한 만큼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만큼 무작정 늘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정보기술(IT)이나 철강, 화학업종 등의 비중이 절대적인 국내 경제의 특성이나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투자 확대가 필요한 시기적 특성을 감안하면 잉여현금을 배당과 투자 확대에 고루 배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작년에 비해 올해 배당을 43%나 늘렸지만 새 회계기준에 맞춰 최대 55조원에 이르는 자본 확충이 필요해 내부 유보금을 적립하라는 지적을 받은 보험사들과 같이 특수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삼성화재와 같이 주가 안정을 위해 자사주 매입을 줄이는 대신 주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배당에 집중할 수도 있고, 다른 금융지주사들의 배당 확대에 동참하지 않고 배당을 동결한 신한금융지주처럼 단기적으로 주가에 악재가 된다해도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 배당을 늘리기보다는 기업가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자본을 운용하는 전략을 세울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배당금 확대는 소액주주 친화정책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에 압박감을 느낀 기업들의 눈치보기도 한몫 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정부 압박이 거세지면서 주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속도를 내고 있고 기관투자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까지 본격화하고 있다. 더구나 금융감독원장까지 나서 “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적극 참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생전 주주들에게 배당을 지급하는 대신 혁신과 성장에 집중했던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을 세계 최대 시가총액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혁신보다 주주이익 환원을 택한 후임 팀 쿡 CEO도 애플의 몸값을 더 끌어 올리는 성과를 냈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50년간 맡으면서 단 한 푼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쓴 적 없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최근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보유현금이 늘어만 가자 주주이익 환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배당정책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처한 상황이나 향후 계획에 맞춰 스스로 전략적으로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배당과 투자, 이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이 언제나 절대적 선(善)일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