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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차의 눈물]②'클린에서 더티' 180도 뒤바뀐 위상… 제조사·소비자 ‘혼란’

김형욱 기자I 2016.06.02 08:00:00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디젤(경유) 엔진 기술은 오히려 지난 5~10년 사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정부 정책, 대중의 평가는 정반대가 됐네요.”

국내 한 완성차 회사 엔진 개발담당 연구원은 최근의 ‘디젤 게이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디젤자동차는 2009년만 해도 ‘클린 디젤’이라며 친환경차의 범주에 포함됐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180도 뒤바뀌었다. ‘더티 디젤’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지난해 9월 폭스바겐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태 터졌고 이 문제가 채 아물기도 전인 지난달 닛산 캐시카이도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자동차 제조사와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디젤차의 수요는 여전한 가운데 정부는 경유값 인상 등 본격적인 디젤 제제 카드를 꺼내 들기 직전이다.

◇‘출시는 당분간 보류하지만…’ 딜레마 빠진 車회사

제조사는 딜레마에 빠졌다. 디젤차의 상품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가솔린(휘발유)과 비교해 주유비는 낮고 연비는 더 좋다. 과거 디젤차의 단점으로 꼽혔던 소음·진동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크게 줄었다. 디젤 고급 세단도 인기다. 국내 제조사도 디젤차 위주인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서라도 디젤차 개발은 어차피 필수다.

자동차 제조·수입사가 디젤차 국내 출시를 포기할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당장 내놓으려는 계획을 미루는 것뿐이다.

현대자동차(005380)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곧 출시하는 G80(현 제네시스 부분변경 모델)의 디젤 모델 국내 출시를 내년 이후로 사실상 미뤘다. 한국GM도 지난달 출시한 신형 말리부에 기존에 있던 디젤 모델 대신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하기로 했다. 수입차인 폭스바겐 신형 파사트, 아우디 A4도 주력인 디젤 대신 가솔린 모델만 우선 국내 출시했다.

대안으로 꼽히는 전기를 이용한 하이브리드자동차(HEV)와 전기차(EV)도 아직은 가격이 한계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평균적으로 한 차종의 가솔린 모델이 2000만원이라면 디젤차는 150만원 높고 HEV는 300만원 비싸다”며 “디젤차와 HEV의 연비가 거의 같거나 오히려 디젤차가 앞서는 현 상황에서 HEV를 선택도록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EV는 더하다. 무려 2000만원 가까이 더 비싸다. 정부·지자체 보조금 1500만원 전후를 포함해도 여전히 500만원 가량 비싸다. 현재처럼 풍력·태양광발전이 아닌 화력발전 위주로 전기를 만든다면 환경오염 요인이라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궁극적인 친환경 이동수단은 HEV를 거쳐 EV로 가리란 전망이 우세하고 회사마다 관련 기술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미래를 위한 대비일 뿐 당장 현실적인 수익 사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디젤차만 환경오염 주범으로 모는 시각도 잘못됐다는 게 대부분 자동차 전문가의 의견이다. 디젤차는 가솔린차와 비교해 미세먼지 배출은 많은 편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은 30% 가까이 적다

폭스바겐의 조작으로 빛이 바라기는 했지만 지난해 유로6 도입으로 질소산화물(NOx) 등 유해 배출가스도 가솔린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줄었다. 2017년 배출가스 실도로 검사가 도입되면 이 문제는 더 줄어들게 된다.

제조사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조작 스캔들의 당사자였던 폭스바겐도 유로5 때와 달리 유로6 신모델 때부턴 유럽의 각종 배출가스 조사에서 배추량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세먼지의 원인이 경유차에만 있는 건 아니다”라며 “지금처럼 경유차만 마녀사냥식으로 몰기보다는 미세먼지의 원인을 파악해 근본적인 장기 대안을 내놓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오염 주범 된 운전자는 ‘억울’… 수요는 여전할듯

디젤차를 산 소비자는 최근 ‘디젤 게이트’가 황당해하고 있다. 연비가 높아서 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으니 당연히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졸지에 환경오염의 주범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소비자에 이어 아직 조작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닛산 캐시카이 소비자까지 집단 소송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불만 때문이다. 현재 조작이 드러나 14만6000여대의 폭스바겐.아우디 차량 차주 중 약 3%인 4432명이 소송에 참여했다. 닛산 캐시카이 고객 8명도 지난달 31일 소송을 시작했다.

지난해 초 폭스바겐 티구안을 산 소비자 A씨는 “사자마자 환경오염 주범이 된 것 같아 처음엔 (제조사에) 배신감을 느꼈는데 최근엔 다른 디젤차도 문제가 있다고 하더니 이제는 고등어 굽는 것까지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한다고 하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단순히 경유 세금 더 걷으려고 이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유값 인상이 현실화되면 디젤차 운전자의 불만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군내 운행 중인 950만대의 디젤차 중 450만대가 현대자동차 포터처럼 주로 업무용으로 쓰이는 승합·화물차다. 경유값이 인상되면 당장 기업이나 영세업자의 수익성을 악화할 수 있다. 물류비 인상이 전체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경유값 인상에 대해 정부부처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는 것도 이런 부담 때문이다.

업계는 ‘디젤 게이트’에도 디젤차 수요가 큰 폭으로 줄어들지는 않으리라 보고 있다. 디젤 모델이 주력인 SUV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고 디젤 세단도 이미 대중화했다. 무엇보다 업무용 승합·화물차 수요도 꾸준하다.

한편 디젤차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늘어 왔으나 올 들어 주춤하다. 2013년 가솔린차 판매를 앞선 이후 지난해는 전체 판매 중 52.5%로 가솔린(37.2%), LPG(7.5%)를 제치고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올 1분기 디젤차 비중은 43.7%로 가솔린(46.8%)에 약간 뒤졌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시행한 20개 디젤 차종 실외 도로주행 시험 결과값. 환경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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