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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인사동①] 전통은 뒷골목, 국적없는 관광지 우려

김인구 기자I 2013.04.17 08:53:39

골동품점·표구사·필방
1000만원 넘는 월세 부담
메인거리서 사라져
中 베이징 '유리창' 닮아가

지난 주말 종로2가에서 바라본 인사동 메인거리. 인사동 하면 떠오르는 전통 상점들이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화장품점이나 커피숍, 관광상품점이 들어서 있다(사진=권욱 기자 ukkwon@).
[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대표적인 우리 전통과 문화의 명소인 서울 인사동이 국적불명의 상업 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인사동 하면 떠오르던 우리 고유의 골동품·갤러리·공예품점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관광객을 겨냥한 저급의 관광상품과 액세서리숍, 화장품점들이 들어차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인사동이 전통과 예술에서 소비와 관광의 거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문화지구 지정 이후 10여년만의 위기다. 더욱이 인사동 한복판에는 대형 관광호텔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국적불명의 관광지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오래됐지만 특색없는 유락지로 전락한 중국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을 닮아간다는 지적이다. 다만 인사동엔 전통과 현대의 상생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국적불명 관광지화 가속화

인사전통문화보존회(이하 보존회)가 최근 조사한 ‘인사동 문화지구 현황 및 실태분석’ 자료에 따르면 표구사·골동품점·필방 등 옛 전통을 잇는 권장업종의 수가 지난 10년간 눈에 띄게 줄었다. 표구사는 2002년 57개에서 2012년 42개로 15개가 줄었고, 골동품점은 같은 기간 72개에서 48개로 24개나 없어졌다. 공예품점은 96개에서 141개가 됐지만 가장 많았던 2009년의 195개에 비해서는 역시 줄었다. 갤러리도 2009년 180개에 비해 2012년에는 176개로 축소됐다.

이들 ‘전통 상점’들은 적어도 안국동 사거리(북인사)에서 종로2가(남인사)로 이어지는 메인거리에서는 대부분 사라졌다. 1000만원이 넘는 월세와 수억원의 권리금을 감당하지 못한 채 뒷골목으로 쫓겨났다. 그 자리엔 대신 자본력으로 무장한 상업시설과 과도한 상행위가 침투하고 있다. 이미 남인사 쪽에는 A사·M사·I사 등 유명 화장품점이 들어섰다. 국적을 알 수 없는 관광상품점도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말할 것도 없다. 안국동 사거리 부근 대로변 약 2075㎡(630평) 부지에는 삼성화재가 관광호텔 건립을 추진 중이다. 작년에 문을 연 하나투어·모두투어의 비즈니스 관광호텔 이후 세번째다.

▲전통 복원·상업화 수용 전략 모색

보존회는 어쩔 수 없는 시대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전통을 더욱 계승·발전시키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지난해 인사동 내 업소 제한 등을 규정하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에 시동을 걸었다. 공청회와 청원운동을 통해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고 있다. 매년 9월에 열리는 인사전통문화축제에는 인사미술제·전통명가전·한옥음악회 등을 추가해 확대 발전시켰다. 견지동(서인사) 쪽에 있는 인사동 홍보관을 적극 활용하고 홈페이지(hiinsa.com)도 개설했다. 홍보관 앞마당에는 약 77억원의 정부지원금으로 지상 5층 규모의 전통문화 복합시설을 세워 뒷골목으로 사라진 갤러리와 공예품점을 복원할 계획이다.

인사동 골목길에 조그만 지하 갤러리를 운영 중인 조남현 피카소갤러리 관장은 “평생 예술을 해오던 공방이나 갤러리 주인들이 인사동 중심에서 많이 밀려나 있는 상태다. 권리금만 3~4억원씩 하는 가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이러다간 문화지구라는 말이 무색해질 위기”라고 말했다.

▲‘유리창’은…

중국 베이징을 대표하는 문화거리다. 인사동과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 청나라 건륭제 때부터 골동품 상가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가짜 제품과 터무니없는 가격 때문에 찾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원래 명나라가 베이징으로 황실을 옮길 때 유리 기와를 만들던 곳이라 해서 유리창(유리공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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