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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수신의 그늘]금융당국은 민원 창구 전락, 검경은 '뒷북수사'

신상건 기자I 2018.01.26 06:30:00

금감원 “유사수신은 불법금융이어서 관할 밖”
"나만 아니면 돼" 이기주의 피해자가 가해자
"파파라치 제도와 정부 차원 의지 천명 필요"

다단계 유사수신 업체인 ‘IDS 홀딩스’ 피해자들과 약탈경제반대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IDS홀딩스와 관련한 법조계, 정관계 배후세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신상건 노희준 기자] 유사수신행위 피해가 반복되고 피해가 커지는 이유는 구조적으로 뒷북 대응이 될 수밖에 없는 제도상의 허점 탓이다. 범죄 예방에 앞장서야 할 금융감독원은 신고 접수 창구 역할 뿐이다. 현실적 제약 탓에 검·경찰 (검경) 역시 피해가 커진 뒤에야 수사에 나서는 게 현실이다. 불법금융 파파라치 제도를 활성화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유사수신행위 근절을 의지를 천명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 금감원 “유사수신은 불법금융이어서 관할 밖”

금감원은 ‘금융기관’을 감독·관리·제재를 하는 곳이다. 금감원은 법적으로 유사수신행위를 단속하거나 적발할 권한이 없다. 유사수신행위는 불법금융이어서 금감원의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다.

8개 조항으로 이뤄진 유사수신법은 유사수신이 무엇(제2조)이며 이를 금지(제3조)하고 어겼을 경우 처벌(제6조)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유사수신법에는 현장활동에 필요한 금감원의 단속이나 지도, 조사 등에 대한 권한 규정이 전혀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수사당국과 공조체계 구축 및 협력 역할”이라며 “금감원이 금융사기를 감독 하는 곳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 제도적 틀도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유사수신행위에 대한 검경의 신고접수를 대리하는 접수창구 역할밖에 못한다는 얘기다.

실질적 수사권한을 가진 검경 역시 기민한 대응에 한계가 있다. 서울시내 A경찰서 수사과장(경정)은 “유사수신 사기 수사는 현재 거의 고소에 의존하는 게 90%”라며 “첩보를 입수해 선제 대응하는 건 쉽지 않다. 뒷북 대응인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피해가 불거진 이후 수사에 착수하는 유사수신행위는 현실적으로 형법상 사기죄나 특경가법상 사기죄로 다룬다. 사기죄 입증이 쉽지 않다는 점 유사수신행위 처벌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기죄 구성의 핵심 요소는 기망(고의로 상대방을 속이려 했다)과 재산상의 손실 2가지”라며 “판례는 기망만으로도 사기죄를 인정하지만 ‘내가 사람을 속일 의사는 없었다’고 피의자가 주장하면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피의자들은 주로 경기가 나빠져 파산했을 뿐 사기를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고 잡아뗀다. 특히 아직 사업을 영위하고 있을 때는 돈을 돌려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피의자의 ‘기망의사’를 입증하는 게 더 어렵다.

12일 서울 한 가상통화거래소에 가상통화 가격대가 표시된 모습 (사진=뉴시스)
◇“나만 아니면 돼” 피해자가 가해자

유사수신행위 특성상 피해가 초기에 노출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도 뒷북대응을 낳은 주요 원인이다. 유사수신행위는 범죄 초기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돌려막기’로 일정 기간 꼬박꼬박 수익을 돌려준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투자 초기 과실을 따먹을 때는 불법, 합법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며 “더이상 배당이 나오지 않고 원금도 찾기 어려워지면 그때야 고소에 나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피해자들이 사기임를 인식하더라도 자신은 본전을 뽑고 유사수신행위의 덫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회사가 파산하지 않길 바라는 경우가 많은 것도 초기 적발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다.

이에 따라 유사수신이 대형 사건으로 비화하기 이전에 금융당국이 초동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조사권 등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사수신법 개정안에는 금융위원회에 유사수신행위 혐의자에 대한 조사권한을 부여하고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한 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이 담겼다. 이기수 전남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초기 단계에서 유사수신이 확인될 경우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영업정지와 폐쇄를 명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사수신 사기에 대한 시민의 신고를 촉진할 수 있도록 ‘불범금융 파파라치’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검경 인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초기 유사수신의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감시의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방예금보험법(FDIA)은 ‘벌금, 배상, 민사처벌 등을 통해 원상회복을 할 수 있게 한 정보제공자에 대한 보상’ 규정으로 벌금, 배상액의 25%이상이나 10만달러(1억700만원 가량)중 더 많은 금액을 내도록 하한선을 규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국정과제로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이라는 4대악을 제시하고 척결 의지를 보이자 현장이 움직였다”며 “유사수신 역시 엄중하게 지속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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