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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홀의 확장성 잘 보여줘’(황장원 음악평론가), ‘해외가 아닌 안방서 최고 음악 맛볼 수 있어’(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빈약했던 공연 인프라에 숨통’(최흥식 서울시향 대표), ‘잘 조합한 성능 좋은 오디오’(강석우 배우 겸 라디오클래식방송 DJ), ‘음의 잔향 즐기는 재미 알게 해’(박제성 음악평론가), ‘학수고대했던 무대, 음향 설비 훌륭해’(정명훈 지휘자).
의견은 다소 달랐지만 음향과 운영 면에서는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지난 26일 개관 100일을 맞은 롯데콘서트홀의 성적표다. 롯데그룹이 1500억원을 들여 첫삽을 뜬 지 5년여 만에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몰 8~10층에 건립한 롯데홀은 서초구 예술의전당 음악당 이후 28년 만에 서울에 들어선 2036석 규모의 대형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다.
초대 대표의 갑작스러운 타계, 사고로 인한 공사중단부터 그룹 일가의 비리의혹, 김영란법에 최순실게이트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가·음악단체 등을 무리 없이 초청·운영하면서 LA 월트디즈니홀, 도쿄 산토리홀과 견줄 만한 수준이란 호평을 이끌어냈다. 롯데콘서트홀 그간의 성과와 계획, 과제와 변화 등을 물었다.
지난 8월 19일 개관공연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상임작곡가 겸 공연기획자문역인 ‘현대음악의 거장’ 진은숙이 정명훈 전 예술감독과 서울시향, 롯데콘서트홀을 위해 헌정한 세계 초연곡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로 포문을 열었다. 이후 100일 동안 7만 859명이 찾았다. 공연 횟수는 52회, 기획·대관공연은 각각 24회, 28회에 달했다.
평균 유료점유율은 65%, 객석점유율도 75%를 넘어서면서 선방을 날렸다. 일명 ‘개관 페스티벌 시리즈’를 통해 다채롭고 풍성한 사운드의 공연을 선보여 대다수 호평을 받았지만 가장 높은 티켓 판매율을 기록한 공연은 프랑스 오르가니스트 장 기유의 리사이틀이었다. 국내 대형 클래식 전용홀로는 처음으로 4958개 관의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면서 첫 독주회를 보기 위한 클래식 팬이 몰렸다.
지난해 서울시향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난 정명훈 지휘자의 ‘왕의 귀환’으로도 화제를 모은 개관공연 역시 롯데콘서트홀의 음향확장성을 확인한 무대로 꼽혔다. 롯데문화재단은 “이날 연주한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과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 앙코르곡 ‘최성환의 아리랑’은 개관공연 실황음반으로 제작해 내년 1월 중 발매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8월 25일 임헌정이 이끈 코리안심포니의 ‘천인교향곡’은 19개 합창단, 1000여명이 출연으로 개관의 의미를 더했다.
내년에도 만만찮다. 현대음악부터 고전, 클래식계 스타리사이틀 등의 굵직한 무대를 예고하고 있다.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아시아 초연과 그라모폰 선정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오케스트라 로열콘세르트헤바우(RCO)의 내한공연을 유치해 17건의 기획공연, 117회 무대를 선보인다. 다니엘 가티가 이끄는 RCO는 이번이 처음. 1월 3~4일 여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독주회는 티켓 판매와 동시에 10분 만에 매진, 국내 클래식계 음악풀을 풍성하게 했다는 평을 받는다. 1주년 개관 기념 음악회는 아직 공개 전. 계약 확정 단계가 아니라 공개할 수는 없지만 큰 이벤트가 마련될 전망이라 클래식 팬들은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다양한 선택…가성비 높은 명당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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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성 음악평론가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음향은 좋다. 그중 객석 1층 E블록 위쪽 사이드가 명당이다. 박 평론가는 “개별 악기군 소리가 명료하면서도 블렌딩이 잘된 최상의 자리”라며 “객석 맨 앞 정면은 오히려 소리가 디테일하게 안 들린다. C블럭 1층과 2층 벽면 맨 뒤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디테일만 개선하면 완벽한 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층 E블록과 객석 1층 C블록 10~15열도 좋은 편. 그럼에도 가성비가 가장 높은 자리는 합창석 옆자리(RP·Right Pipe Organ)다. S석으로 가격이 싼 데다가 무대가 바로 내려다보여 출연진의 손짓과 움직임을 두루 볼 수 있다.
피해야 할 사각지대도 있다. 객석 1층 A블록 5열 2번, 1층 R구역 1열 12번 자리는 난간 안전바 등으로 시야가 불편해 정상가에서 30%를 할인해준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내 최고의 콘서트홀을 넘어 아시아 최고로 평가받겠다.”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콘서트홀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30년 가까이 공들인 롯데그룹의 숙원사업이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대 도전작이다. 신 회장은 클래식음악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해 롯데문화재단을 출범하며 재단 출연금 총 200억원 중 사재 100억원을 내놓기도 했다. 공연장 민간투자로는 역대 최대다. 민간기업이 대규모 클래식 전용 공연장을 건립·운영하는 것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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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있다. 콘체르탄테(오페라콘서트)를 넘어 홀 오페라의 개념을 주도하는 식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600석 규모의 리사이트홀이 없는 점, 해외에 알릴 수 있는 대규모 페스티벌이 없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올해 사회공헌공연은 총 2회, 내년에도 두 차례를 예고하고 있지만 부족하지 않으냐는 말도 나온다. 대관료는 1000만~1200만원대. 옵션을 포함하면 2000만원으로 비싸다는 지적이다.
국내 공연장 최초로 인터미션 30분(기존 15~20분)을 통해 새로운 공연문화를 시도한 점은 좋았지만 국내 상황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왔다. 유럽과 달리 해가 빨리 지는 점, 국내 직장인들의 피로도가 높은 점 등 공연 시간을 좀더 압당기거나, 짧은 공연에만 적용한다던지 도입 시기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공연 소비자를 많이 키워낼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췄다. 음향이 좀 더 익숙해지면 충성관객도 늘 것으로 예상한다”며 “같은 음악재료도 그릇에 따라 향신료에 따라 달라지는데 더욱 다양한 맛을 볼 수 있게 됐다. 틀에 박힌 도그마를 벗어나 선택의 지평을 넓혔다. 클래식계 발전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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