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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골리앗 오토캐드와 양강구도, 국산 캐드업체 인텔리코리아의 비결

박경훈 기자I 2016.09.19 07:00:00

대한민국 오토캐드 1세대, 박승훈 대표
'90년 창업 후 숱한 자금 위기 겪어, '98년 캐디안 출시
성공비결, 저렴한 가격·미투(Me Too)전략
"2017 버전, 속도 획기적 개선.오토캐드와 진검승부

[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단점으로 지적되던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했습니다. 오토캐드와 본격적인 진검승부를 시작할 겁니다.” 캐드(CAD) 외길 35년 박승훈(58) 인텔리코리아 대표의 포부다.

박승훈 대표는 “인텔리코리아가 2014년부터 3년 연속 3D프린팅강사 양성기관에 선정됐다”고 말했다. (사진=박경훈 기자)
지난 13일 서울 금천구 인텔리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최근 출시한 캐드프로그램 캐디안(CADian) 2017 자랑부터 시작했다.

PC기반 일반설계용 캐드는 1982년 등장한 오토데스크사의 오토캐드(AutoCAD)가 곧 캐드라고 인식될 정도로 그간 세계시장을 장악해왔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시장은 연간 약 300억원, 이 중 오토캐드 매출은 250억원으로 추정된다. 강소기업 캐디안은 이 거대 외국기업에 맞서 당당하게 지난해 이 시장에서 5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간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기업이 캐드시장에 진출했지만 오토캐드 벽에 막혀 번번이 사업에서 철수해 사실상 이 시장은 현재 오토캐드와 캐디안의 양자 대결구도다. 대기업인 삼성SDS(018260)도 한 때 유니캐드란 이름으로 캐드 시장에 진입했지만 오토캐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업을 철수했다.

◇ 대한민국 오토캐드 1세대, 박승훈 대표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박 대표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캐드와 인연이 없었다. 그는 1981년 대학 졸업 후 제일정밀공업(현 퍼스텍(010820))에서 군 대체복무를 하며 캐드를 처음 접하게 된다. 박 대표는 “오토캐드를 한국에서 거의 처음 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글 교재는 상상도 못했다”며 “외국 교재를 일일이 번역하며 캐드를 하나하나 배워나갔다”고 돌이켰다.

박 대표는 1990년부터 10여년 간 직장 생활을 하다 갑자기 부도난 거래처를 인수하며 CEO(최고경영자)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최고 경영자로 나서며 주력으로 내세웠던 모니터·플로터(도면 출력장치)·캐드 등을 결합한 위캔시스템(현 인텔리코리아)은 얼마 안 있어 경영난에 빠졌다.

당시 외상관행과 어음제도, 숙련되지 않은 경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수억원의 부채가 회사를 부도위기로 내몰았다. 박 대표는 이 일로 지하 단칸방 신세까지 지게 된다.

◇ 국산 캐드, 삼성은 실패하고 캐디안은 살아남아

그나마 다행스럽게 제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해 판매 자체는 계속 이어졌다. 동시에 오토캐드 판매시장도 점차 과열됐다. 박 대표는 이 시장 과열경쟁 구도를 극복하기 위해 1994년 자체 캐드프로그램 개발에 나서 독자 제품을 선보인다. 하지만 1998년 삼성SDS의 유니캐드와 인텔리코리아의 인텔리캐드(현 캐디안)가 몇 달 간격을 두고 세상에 나오면서 위기에 몰렸다.

이 난국에서 그가 돌파구로 선택한 전략은 ‘미투(Me Too)전략’이다. 우선 오토캐드와 UI(사용자인터페이스), 명령어부터 유사하게 만들었다. 도면파일 역시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호환 가능토록 했다.

반면 삼성SDS의 유니캐드는 오토캐드와 차별화 전략을 폈다. 양 도면파일 간 호환은 가능했지만 변환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불편했다. UI와 명령어도 유니캐드만의 특성을 갖춰 내놓았다.

일반설계용캐드 시장은 사실상 오토캐드가 독점하고 있던 상황에서 새로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유니캐드는 외면을 받았고 결국 삼성SDS는 관련 사업에서 철수한다.

처음엔 단순히 값싼 미투제품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캐디안은 시장에서 푸대접을 받았다. 박 대표는 “공단지역 공장을 가면 문앞부터 경비원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며 “대신 직원이 적어 접근이 쉬운 건축사 사무실을 공략했다”고 돌이켰다. 이 전략이 들어먹혀 점차 가격 대비 제품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출시 이듬해 매출은 8억원까지 올랐다. 현재 건축설계용 캐디안의 국내 점유율은 약 40%에 달한다.

사진 왼쪽부터 캐디안 2008·2010·2012·2014·2017 버전. (사진=박경훈 기자)
◇ “2017 버전, 약점인 속도 대폭 개선”

2000년대 들어 박 대표는 공격적으로 납품처를 늘린다. 특히 공공조달 시장을 적극적으로 노렸다. 그는 “공공조달을 통해 전국 234개 지자체의 48%(110여개)에 캐디안 제품을 납품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015760)·코레일·대구지하철공사 등 공공기관, 서울대·카이스트·연세대 등 대학, 삼성전자(005930)·KCC(002380)·KT(030200) 등 기업체 등에도 캐디안이 자리 잡고 있다. 박 대표는 그 비결로 “우리는 캐디안 납품 시 사용처에 맞춤형 설계를 해준다”며 “외국 업체인 오토캐드와 비교해 가지는 장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캐디안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대형 도면 작업 속도가 오토캐드에 비해 심각하게 느렸다. 박 대표는 “2014 버전까지 속도 문제로 캐디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며 “2017 버전은 오토캐드 속도의 90%까지 근접해 대용량 도면 작업도 큰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박 대표는 “살아보니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게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며 앞날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다만 그는 “성공은 확신 못할 수 있지만 적어도 망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는 말로 캐드 외길 35년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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