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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한국은 상품(Commodity)선물 거래 불모지다. 선물시장의 배후지 역할을 하는 현물시장 규모가 충분치 않은데다 정부 개입 등으로 가격 변동폭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원유와 철광석 등 주요 상품의 생산지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거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나프타와 삼겹살 등 국내에서도 선물상품으로서의 매력이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한국형 상품선물시장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 에너지·인프라사업 진출과 상장지수펀드(ETF) 등 금융상품을 연계하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돈육선물 상장 3년돼도 거래 `0`
글로벌 상품선물시장을 구성하는 주요 품목은 원유와 농·축산물, 금속 등이다. 국내에서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선물 거래를 하기 쉽지 않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은 각각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와 영국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주로 거래된다. 아시아 원유 선물거래 중심지는 싱가포르다. 박근혜 정부도 울산과 여수에 3660만배럴 규모의 원유 저장시설을 짓고 국제석유거래소를 설립하는 내용의 동북아 오일허브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전제 조건인 석유사업법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 20대 국회로 넘어오면서 자동 폐기됐다. 세계 1위 원유 저장업체인 네덜란드 보팍은 지분 참여를 검토하다가 지난해 결국 발을 뺐다. 한국거래소의 원유선물 상장 계획도 답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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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도 녹록치 않다. 쌀 등 주요 농산물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한다.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 실현이 목표인 선물 거래 참여자 입장에서 국내 농산물 시장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나마 가격 등락폭이 컸던 돈육(돼지고기)를 기초자산으로 선물시장을 개설했지만 지난 2013년 68계약을 끝으로 2014년부터 현재까지 거래가 전무하다. 시장성 조사에 실패한 탓이다. 김중흥 금융투자협회 파생상품지원부장은 “돈육 농가는 가격이 오를 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정부가 일정 부분 보전해주기 때문에 헤지(위험 회피)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헤지가 없으니 선물시장도 위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광석 등 금속선물시장은 중국이 주도한 지 오래다. 중국이 세계 최대 철광석 소비국이자 철강 생산국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선물거래소(SHFE)와 다롄상품거래소(DCE)는 지난해 금속 파생상품 품목별 거래량에서 1~4위를 휩쓸었다.
“국내 실정에 맞는 상품 발굴해야”
상품 선물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국내 실정에 맞는 새로운 품목을 찾아야 한다. 원유 대신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선물시장을 구축하는 식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기술력과 수출 비중 등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주한 한국거래소 금융파생개발팀장은 “다양한 품목에 대한 선물 상장 타당성을 검토 중”이라며 “가장 먼저 상장할 품목은 아마도 석유제품이 될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특히 생산량이 세계 1~2위를 다투고 중국 등 수요처도 많은 나프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제품의 주원료로 울산과 여수에 대규모 생산단지가 조성돼 있다.
돈육 중에 삼겹살만 떼내 선물 거래를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육(돼지를 도축한 상태) 단위로 거래하는 것보다 가격 변동이 커 투자와 헤지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해외 에너지·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매입한 자산을 ETF와 ETN(상장지수채권)으로 상품화해 거래하는 방식도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몽골 등에서 개발하는 유전과 광산 등을 기초자산으로 파생상품을 설계하는 식이다. 실제로 글로벌 에너지 파생상품과 금속 파생상품 거래량 상위 20위권에 ETF 상품이 각각 2개씩 포함돼 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형 상품 선물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투명한 가격구조가 필수적”이라며 “우리 현실에 맞지 않거나 이미 기회를 잃은 분야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품목군을 발굴해 선물 거래를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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