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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여자들은 다 나이 먹으면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져요? 옛날에는 말도 제대로 못하던 사람이 지금은 잔소리 대마왕이에요”(종수). “어디 갔다 이제와? 늦는다고 전화 한통 못해? 술 좀 작작 마셔. 허구한 날 술이야. 양말도 똑바로 벗어서 빨래통에 갖다 넣어. 뒤집어서 아무 데나 처박아 넣지 말고!”(종수 아내).
많이 들어본 말이다. 심지어 내 얘기 같다. 우리 이웃의 공감가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온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가 또 한번 관객을 찾아왔다. 중년 인생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풀어내며 부부·커플관계를 회복해주는 힐링극이다. 작가이자 연출인 극단 ‘나는 세상’의 김영순 대표가 실제로 몇달간 찜질방에서 지내며 관찰한 중년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마누라와 자식을 피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찜질방을 찾은 남자, 시어머니가 남편 편만 들어 서운한 며느리, 늦은 나이에 꼭 손자를 보고 싶은 시어머니 등 실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찜질방 수다’로 쏟아내며 웃음과 감동을 만든다. 2013년 초연 이후 지방 24곳을 돌며 관객을 만났다. 서울에서는 이번이 세 번째 앙코르공연으로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성동구 성수아트홀에서 공연한다.
지난 13일 마티네 공연을 마친 직후 이홍렬(영호), 이훈(종수), 장영주(말복), 김정하(영자), 박현정(춘자), 장혜리(오목) 등 6명의 주역배우를 만났다. 찜질방으로 꾸민 무대에서 때로는 폭소로, 때로는 눈물짓게 하는 대사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평소에도 친하게 지낸다는 이들의 무대 밖 유쾌한 수다에 동참했다.
△6명 합은 처음 “가족처럼 사이 좋아”
“연출가가 너무 까다롭지 않나. 화합이 잘되고 인성이 좋아야만 우리 팀에 들어올 수 있다”(장영주). 맏언니의 설명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쳤다. 2주마다 한번씩 회식을 ‘쏘는’ 든든한 선배라는 이홍렬은 “10여년 만에 연극무대에 서는데 서로 잘 통해 너무 좋다”고 말했고 박현정은 “맞다. 우리는 가족 같다”고 답했다.
배우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작품의 강점은 ‘공감’이다. 누구나 자신과 동일시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의 입장을 알게 돼서 좋다. 힘든 속사정을 얘기하지 못하고 아파도 참는 춘자에게서 나를 본다. 힘든 시간을 겪어봐서 알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됐다”(박현정).
특히 세월이 흘러 엄마가 된 영자가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며 오열하는 장면에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형님, 내 자식이 그러니까 요즘은 울 엄마 생각이 나면서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새끼가 해달라는 돈은 땡빚을 내서라도 못주는 게 한이더니 우리 엄마가 중풍 걸렸을 때 형제끼리 나눠서 다달이 30만원씩 내는 병원비는 부담이 됩디다.’ 영자 역의 김정하는 “이 대사만 수천번 외웠을 거다”라며 “오늘도 한 관객이 티슈를 뭉텅이로 가져와서 옆 사람에게 나눠주더라”라고 말했다. 장영주 역시 “영자가 엄마 얘기할 때마다 나도 같이 운다”며 “잘 해드려야지 늘 다짐하면서도 현실에선 못할 때가 많다. 반성하며 무대에 오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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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반응도 가지각색…“내 얘기 같아”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많다. 한번은 이혼하려는 부부를 초대했는데 공연을 본 후 손잡고 울면서 나가더란다. 즉각적인 반응이 오기도 한다. 감정을 이입해 무대로 외치거나 얄밉다고 무대로 뛰어 올라와 때리고 내려간 관객도 있었다. 그만큼 공감을 한다는 얘기다. 권혜영은 “극 중에선 욕도 잘하고 과격한 싸움도 하는 센 이미지지만 사실 내 안에도 춘자와 같은 여린 마음이 있다”며 “마지막에 춘자와 포옹하는 장면에선 매번 엄청 운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배우들은 더 많은 관객이 함께 공감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홍렬은 “처음 대본을 봤는데 너무 내 얘기 같더라. 얼마 전 집사람이 ‘변기 뚜껑 좀 내려라’라고 야단을 치는데 극 중 상황과 똑같아서 크게 웃었다”며 “부부 사이에도 즐거운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나이 들면서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극중에 그런 요소가 많이 녹아 있다”고 소개를 잊지 않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함께한 이훈은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는 결혼생활 지침서가 될 테고, 나처럼 10년 차 부부에게는 결혼 체크리스트 같은 공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혜영은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김정하는 “공연을 하면서 나도 힐링하는 기분”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6명의 배우는 마지막까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많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공연을 보면서 위로를 얻길 바란다. 정말 좋은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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