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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임 키워드]'꾸준하고 차별화된 경쟁력이 답'

성선화 기자I 2013.03.07 08:30:00

하영구 씨티은행장, 5연임으로 국내 최장수 행장
뛰어난 정치감각으로 정부·노조와 이해관계 조율

[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겸 한국씨티그룹 회장이 은행권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오는 29일 주주총회를 거치면 은행장만 다섯 번째 연임하면서 국내 최장수 은행장으로 등극한다. 철저하게 실적 위주로 평가를 받는 외국계 은행이라는 점에서 더 이례적이다.

미국 씨티그룹 본사 최고경영자(CEO)인 비크람 팬디트도 5년을 넘기지 못했다. 2007년 취임 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겼지만, 고배당 약속을 지키지 못해 지난해 10월 전격 경질됐다. 하영구 행장은 씨티그룹 계열사 가운데 금융위기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은행장으로 꼽힌다.

◇외길 12년..차별화된 경쟁력이 답

그렇다면 하영구 행장의 경쟁력은 과연 무엇일까? 하 행장은 가장 첫 번째로 차별화를 꼽는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연 평균 6~7%씩 성장한다. 하지만, 씨티는 1% 내외에 불과하다.” 그는 국내 은행들이 외형성장에 드라이브를 걸 때도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다.

하 행장은 2004년 한미은행장으로 취임한 후 씨티그룹과의 합병과정을 쭉 지켜봤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차별화 포인트도 명확하게 간파했다. 국내 은행들을 추종하기보단 씨티그룹이란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차별화된 경쟁력에 승부를 걸었다.

대표적 사례가 중소기업 지원이다. 씨티은행은 국내 알짜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이 해당 중소기업에 매긴 신용등급은 전 세계 씨티은행이 공유한다. 따라서 씨티그룹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국내 중소기업도 현지에서 얼마든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한국씨티은행이 보증을 서줄 수도 있다. 하 행장은 “앞으로 3년간 국내 히든 챔피언 중소기업들의 글로벌화를 돕고 싶다”면서 “열심히 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흔들림 없는 리더십..조직안정 기여

하 행장의 또 다른 강점은 안정성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리더십은 화려하진 않지만 알차다. 무리수를 두지 않고 철저하게 정도를 지킨다. 지난 12년간 큰 CEO 리스크 없이 안정적으로 조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성과 역시 꾸준하다. 한국씨티은행은 완만하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당기순이익은 2004년 3420억원에서 2011년 4560억원으로 크게 늘지 않았지만, 자산 건전성의 척도인 BIS 비율은 17.4%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3년마다 CEO가 바뀌면서 불확실성이 반복되는 국내 금융권의 상황으로 하 행장은 더 진가를 발휘한다. 다른 은행들이 3년마다 외풍을 타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씨티은행은 일관된 경영전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하 행장의 연임을 바라보는 내부의 시각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노동조합이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연임을 반대하고 있지만, “변화보다는 안정을 위해 잘 됐다”는 안도감이 우세하다. 묻어난다.

◇뛰어난 정치감각으로 이해관계 조율

하 행장은 뛰어난 정치감각도 자랑한다. 씨티그룹 본사는 한국의 강한 노조를 가장 큰 리스크로 인식한다. 은행권 초유의 장기파업 사태를 겪은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좋은 예다. 하 행장은 끊임없이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노조와 큰 마찰 없이 조직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명예퇴직을 단행하면서도 큰 잡음이 없었다.

한국에선 금융당국과의 관계도 노조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하 행장은 정부와의 관계를 무난하게 유지하면서 내부 단도리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금융당국도 하 행장의 5연임에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내부 임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열심이다. 어린 직원들과도 쉽게 농담을 하면서 그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그의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실제로 은행 안팎의 이해관계 조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만 씨티은행 전체적으로 보면 내부 “후계자가 없다”는 점은 취약점으로 꼽힌다. 스티브 잡스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애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포스트 하영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 행장은 향후 3년에 대한 포부를 묻는 질문에 “우리 기업, 더 나아가 우리 경제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하영구 행장은

전라남도 광양 출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를 졸업했다. 81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행해 투자금융부문 대표와 기업금융부문 부대표, 소비자금융부문 대표를 거쳐 2001년 한미은행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도 함께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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