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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 끓는 물이 만들었다 [물에 관한 알쓸신잡]

이명철 기자I 2021.11.13 11:30:00

증기에서 시작한 산업혁명, 전기·AI까지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난로 위 주전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수증기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은 난로도 보기 쉽지 않고 난로 위에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는 더욱 보기 쉽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주전자에 미리 물을 끓여 두지 않아도 필요할 때 언제든지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진=이미지투데이)


주전자에서 물이 끓을 때 나오는 이 수증기가 인류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류 문명 대부분은 끓는 물이 만드는 수증기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사람보다 바둑을 잘 두고, 운전도 잘 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으로 시작된 3차 산업혁명, 전기 발명으로 시작된 2차 산업혁명, 그리고 증기기관의 발명이 가져온 1차 산업혁명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증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을 제임스 와트(James Watt)로 기억하지만 사실 증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영국의 발명가인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입니다.

1705년 그가 최초로 발명한 증기기관은 상하 피스톤 운동 형태로 광산에서 발생하는 물을 퍼올리기 위한 펌프에 적용됐습니다.

60여년이 지난 1765년, 우리가 알고 있는 제임스 와트는 기존 토머스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개량해 현재와 같은 모양의 증기기관을 만들었습니다. 기본적인 원리는 물을 끓여 발생하는 수증기의 압력을 이용해 장치를 회전시키는 것입니다.

액체 상태의 물은 기체 상태 수증기가 되면 부피가 1244배나 늘어나고 온도 증가에 따른 부피 증가까지 고려하면 1500배 이상으로 증가합니다. 이렇게 늘어난 부피는 팽창하면서 압력을 만들어 내고, 이 압력을 운동 에너지로 바꾼 것이 증기기관입니다. 운동 에너지를 회전력으로 바꿔 기차의 바퀴에 적용한 것이 증기 기관차입니다.

증기기관에서 얻은 회전력을 바퀴에 적용해 증기 기관차를 만들었던 인류는 그로부터 100년쯤 지난 1860년대에 회전력을 발전기에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프랑스의 발명가 제노브 테오필 그람이 만든 인류 최초의 발전기가 2차 산업혁명을 가져오게 됩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증기기관과 발전기가 완전히 다른 영역의 발명품 같지만 증기에 의한 운동 에너지를 회전력으로 바꿔서 무엇인가를 회전시킨다는 원리는 같습니다.

전기는 산업의 쌀이라고 할 만큼 산업발전에 중요한 요소고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에너지원입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에너지원 중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되기 때문에 전기 없이는 AI를 비롯한 첨단산업뿐만 아니라 산업 자체가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의 종류에는 화력·원자력·수력·풍력·태양광 등 방법이 있지만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65% 가량은 석탄과 천연가스의 화력에 의존합니다. 다음으로 원자력이 30% 가량을 차지하고 나머지 5% 정도 전력을 수력·풍력·태양광 등이 만들고 있습니다.

전력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력·원자력 발전은 물을 끓이는 방법만 다를 뿐 수증기의 힘으로 발전기를 돌리는 원리는 똑같습니다.

화력 발전은 화석연료를 태운 열로 물을 끓이고 원자력 발전은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물을 끓입니다. 나머지 발전 방식은 수증기를 이용하진 않습니다. 수력·풍력 발전은 수증기 대신 물과 바람이 발전기를 돌리고 태양광 발전은 태양광 패널이 태양광 광전 효과에 의해 전기를 만들어 냅니다.

증기기관이 만들어지면서 시작한 1차 산업혁명은 인류 문명에 혁명을 가져왔고 전기가 발명된 이후에는 혁명을 넘어 예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증기기관과 전기를 발명한 바탕에는 모두 끓는 물이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물을 끓일 것인가, 그리고 수증기가 만드는 힘으로 무엇을 돌릴 것인가만 다를 뿐이었습니다.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가 뿜어내는 하얀 수증기 덕분에 인류는 지금의 문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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