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광 법무법인 예화 변호사] 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이 연출하고 애쉬튼 커쳐가 스티브 잡스 역할을 맡아 화제를 모았던 2013년 개봉작 영화 ‘잡스’를 보면 스티브 잡스의 괴팍하면서도 독단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업무실적으로 실망한 직원에게 화를 내고 망신을 주는 장면이다. 직원이 “Am I fired?(저 해고되는 건가요?)”라고 묻자 스티브 잡스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You already fired(넌 이미 해고야)”라고 답한다.
영화 속 이 장면을 보는 사람마다 입장에 따라 감흥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일반적인 직원 입장이라면 영화 속의 스티브 잡스일지언정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장면처럼 “넌 해고야”라는 말은 현실에서 어떤 법적 효과를 불러올까.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93조 제11호는 근로자의 제재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의 필요적 기재사항(반드시 기재해야 하는 사항)으로 규정한다.
즉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어떠한 사유를 들어 해고 등 징계를 할 때에는 그 사유가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서 정한 징계사유에 해당되어야 한다. 취업규칙 등에 열거되지 않은 사유를 징계사유로 삼았다면 그 징계는 무효이다.
또한 최초로 어떤 사유로 징계를 하기로 했다면 실제 징계 여부는 최초 징계사유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애당초 징계사유로 삼았던 것과는 그 내용과 성격이 전혀 다른 별개의 사유까지를 포함시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근로자가 징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사용자를 상대로 다투는 절차인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절차(지방노동위원회 소관)와 지방노동위원회 결정에 대한 재심절차(중앙노동위원회 소관)에서 가장 먼저 심리대상이 되는 쟁점이 있다. 사용자가 근로자를 징계함에 있어 ‘정당한 사유’가 있었느냐 보다는 그 징계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뤄졌느냐이다.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징계권을 공정하게 행사하도록 하기 위해선 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징계절차를 준수해야 함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또는 이에 근거를 둔 징계규정에서 징계위원회 구성에 △노동조합 대표자를 참여시키도록 돼 있는데도 참여시키지 않았거나 또는 △징계대상자에게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변명과 소명자료를 제출할 기회를 부여하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징계사유 인정 여부에 관계없이 절차에서의 정의에 반하는 처사로서 그 징계자체가 무효가 되고 만다.
징계규정에 해당사유가 있다는 점만으로 당연히 그 징계처분이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구체적 사정을 참작해 위와 같은 의미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야 비로소 그 징계처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근로자의 근무경력·사건동기·경위와 정도 등을 참작하지 않은 징계는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한 부당한 징계일 뿐이다.
영화가 속 스티브 잡스가 현실에서 “넌 이미 해고야”를 근로자에게 외치는 그 순간 이미 징계해고의 절차적 정당성은 상실되고 만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김대광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41기 △서울구로경찰서 경미범죄심사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중고기업고문변호사단 △대한변호사협회 ‘형사법’ 전문등록 △배심제도연구회 재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