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의 한류 열풍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해외 공영방송이 한국 드라마를 소개한 곳이 베트남이다. 1995년 베트남 국영방송 ‘VTV1’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 드라마 ‘내 사랑 유미’를 전국으로 방영했다. 이후 ‘의가형제’(1998년), ‘가을동화’(2001년), ‘대장금’(2004년) 등 K드라마가 연속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베트남 내 한류 열풍 정착의 기반을 일궜다.
석진영 베트남 한국문화원장은 “1990~2000년대 초에 태어난 젊은 ‘베트남 신여성’ 세대가 문화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역”이라며 “베트남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달해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나 개인적인 성향이 높다. 이들을 중심으로 K콘텐츠에 두터운 팬층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한류를 향한 높은 수요는 양국 합작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2010년대 초부터 지속 중인 K무비 합작-리메이크 열풍이 대표적이다. CJ ENM은 2011년 영화 ‘퀵’으로 처음 베트남 배급 시장에 진출한 이후 2015년 ‘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 버전인 ‘내가 니 할매다’를 시작으로 ‘걸 프롬 예스터데이’, ‘고고 시스터즈’, ‘마이 미스터 와이프’ 등 총 15개의 합작 영화를 제작했다. 이 중 5편이 역대 로컬 영화 흥행 톱 20위권에 진입했다.
롯데컬처웍스는 2017년 첫 베트남 투자 배급작인 ‘혼 파파 자 꼰가이’로 현지에서 92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혼 파파 자 꼰가이’는 한국 영화 ‘아빠는 딸’의 리메이크작이다. 2020년에는 한국 영화 ‘완벽한 타인’의 리메이크작인 ‘블러디 문 페스트’가 코로나19 속에서도 245만 관객을 기록해 역대 베트남 흥행 순위 1위를 거뒀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스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이어진 한류 열풍 덕분에 K콘텐츠 자체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며 “가족 문화 등 정서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아 현지 관객들이 리메이크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판 ‘1박2일’까지…“다양한 합작 아이디어 논의”
합작 드라마의 제작 수요도 높다. 2015년 CJ ENM과 국영방송 VTV가 공동제작한 드라마 ‘오늘도 청춘’은 특히 큰 성공을 거둔 프로젝트로 꼽힌다. 베트남의 젊은 남녀가 펼치는 청춘 로맨스 드라마로,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시즌2까지 제작됐다. 당시 주연 배우 강태오는 현지의 권위 있는 시상식인 VTV ‘2015 드라마어워즈’에서 이 드라마로 국내 배우 최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에 공식 초청을 받기도 했다.
2020년 12월엔 아리랑TV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아세안 합작 웹드라마를 선보였다. 한국-아세안 특별정상회의 1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작품에선 국내 배우 성훈과 베트남의 국민 여배우 황옌 치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2017년부터는 합작 예능도 활발히 제작됐다. ‘나의 비밀친구M’, ‘Bistro K 행복식당’, ‘맛있는 드라마 여행’ 등이 론칭돼 인기를 거뒀다.
최근에는 KBS2 인기 예능 ‘1박 2일’을 벤치마킹한 베트남 예능프로그램 ‘여행의 발견’이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베트남의 유명 연예인 4명이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며 한국의 관광 자원을 알리는 취지다.
다만 코로나19로 영화 등 제작 시장이 위축되면서 활발했던 합작 논의가 뜸해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CJ ENM 관계자는 “베트남의 스포츠 스타부터 고려의 장군이 된 베트남의 이용상 왕자와 같은 역사의 위인 등 한국과 베트남에서 유명한 인물들을 조명하는 이야기를 합작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들이 많았다”며 “올해를 기점으로 코로나19 회복세가 빨라지고 있고,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 30주년을 맞은 만큼 다시 관련 논의 및 제작 시도가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2022 K-박람회 베트남’의 실적에 따르면 앞으로의 전망은 희망적이다. 지난 15~18일 베트남 하노이 일대에서 열린 ‘2022 K-박람회 베트남’에선 CJ ENM, SLL 등 국내 39개 콘텐츠 기업을 포함한 109개 한류 연관 기업들이 참여했다. 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베트남은 물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4개국에서 250여 명의 바이어가 출석해 한국의 콘텐츠 기업들과 1:1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했다”며 “4650만 달러(약 660억 원) 규모의 상담액을 기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