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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홍콩 ‘Vinexpo’ 와인 박람회에서 생떼밀리옹(Saint-Emilion) 기사 작위 ‘쥐라드’(Jurade)를 받은 이마트(139480) 와인 바이어 명용진(38)씨는 “뻔한 말 같지만 그게 진리”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뻔한 말이 진리’라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철학이다.
사실 8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와인에 대해 문외한인 ‘와인 초보’였다. 소주나 막걸리는 좋아했지만 와인은 가격이 비싸 ‘기념일에나 마시는 술’ 정도로 여겼다.
2005년 이마트에 입사한 이후 초반에는 와인과 전혀 관계 없는 인사나 점포 관리 업무를 맡았었다. 그러던 2010년 돌연 와인을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와인숍을 하는 선배가 10만원이 넘는 와인을 줬을 때에도 떫고 시큼한 맛에 적응이 안 돼 한 입만 마시고 방치했을 정도로 전혀 몰랐죠. 상품을 판매하려면 알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읽기 편한 만화책부터 훑어보며 와인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용어들이 워낙 어려워 레드 와인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까베르네 쏘비뇽’의 이름과 특성이 입에 붙게 하기까지 2주나 걸렸다.
3년 간 독학을 하면서 와인 아카데미 수업도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터득한 정보는 기본적인 뼈대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와인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고 뼈대 위에 와인에 담긴 이야기 등 자신만의 살을 붙이게 된 건 수많은 시음을 통해서였다.
그는 “와인 담당으로 발령이 난 뒤 하루 한 병 이상씩 와인을 마셨다”며 “말 그대로 가격·종류 안 가리고 ‘닥친는대로’ 마셨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도저히 입맛에 맞지 않아 한 모금 마신 채 버린 것도 있었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 와인도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와인을 접하다 보니 어느덧 자신에게 맞는 와인도 명확해졌다. 초반에는 맛의 임팩트가 강하고 품종의 맛이 뚜렷한 칠레산이 좋았지만 3~4년 전부터는 다채롭고 부드러운 맛이 느껴지는 올드 빈티지나 유럽 와인에 더 손이 간다고 했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깊어지면서 업무적으로 와인을 다루는 노하우도 쌓였다.
지난 2013년 당시 와인 바이어였던 현 주류팀장을 도와 이마트 개점 20주년을 기념해 칠레 로스바스코스 와인 2종을 선보였다. 한 달 동안 4억원 어치 이상이 팔려나갈 만큼 그야말로 ‘히트’를 쳤다. 11월에 본격 출시해 같은 해 12월 ‘올해의 와인’에 선정됐을 정도였다.
이는 국내 와인 시장의 잠재력에 대해 의문을 갖던 세계 유수의 와이너리들이 우리나라 시장을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됐다.
지난해에는 자신이 스스로 프랑스 보르도 생떼밀리옹의 프리미엄 와인 ‘샤또 뿌삐유’를 반값 수준으로 기획, 한 달 만에 1억5000만원 어치를 판매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세계 와인 시장에서 폭넓은 인맥을 구축하면서 이마트의 와인 판매 역량에 대한 신뢰도 쌓아가고 있다.
이는 곧 세계 시장에서 ‘바잉 파워’를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 이마트의 와인 매출 규모는 약 800억원. 내년에는 1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 전체 중 약 16%를 차지한다.
쥐라드 기사 작위를 받은 소감을 묻자 “내가 받았다기보다 이마트를 대신해 대표로 받은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자신의 영광보다 사람들이 와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끌게 되는 작은 소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와인을 쉽고 바르게 선택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지가 최대 고민 거리”라는 그는 “부족한 능력이지만 ‘와인의 대중화’를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