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만에 누진제 판결 임박.."41.6배 폭탄" Vs "원가 이하"

최훈길 기자I 2016.10.02 10:01:49

6일 첫 선고..한전 상대로 누진제 위법성 판결
"국민 재산권 침해" Vs "OECD 58%로 저렴
소비자 2만명 10건 소송 진행중, 하반기 잇단 선고
당정TF "판결 보고 11월 최종안"..야당과 진통 불가피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오는 6일 누진제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판결이 나온다. 42년 전 도입된 누진제의 위법성을 가르는 첫 판결이다. 재판 결과는 잇따른 유사 소송과 누진제 개편안을 준비 중인 정부 정책 향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8단독 재판부(판사 정우석)는 오는 6일 오전 10시 중앙지법 동관 557호 법정에서 한국전력(015760)공사를 상대로 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집단소송에 대한 선고를 한다. 2014년 8월 4일 법무법인 인강이 시민 21명을 대리해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지 26개월 만이다.

◇소비자 “공정성 잃은 요금 약관” Vs 한전 “OECD 58% 수준”

한전의 ‘전기공급 약관’에 따르면 6개 종별(주택용, 일반용, 교육용, 산업용, 농사용, 가로등)로 요금이 분류된다. 주택용은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요금이 급증하는 6단계 누진요금제로 구성돼 최저·최고 요금이 11.7배 차이(한전 추산)가 난다. 한전은 이 약관에 근거해 산업통상자원부 인가를 받아 요금을 부과한다. 평소 월 전기요금을 3만원 가량 내던 가정이 소비전력이 높은 난방기기를 사용하면 누진제 영향으로 난방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기기 사용시간을 매일 5시간에서 10시간으로 두배 늘려도 사용요금은 두배 넘게 올라간다. (출처=한전, 오른쪽 건물은 전남 나주 본사)
재판의 쟁점은 한전의 전기공급 약관이 약관규제법을 위배해 공정성을 잃었는지 여부다. 원고 측은 누진제를 명시한 한전의 ‘전기공급 약관’이 위법하기 때문에 누진제로 얻은 ‘부당이익’ 전기료를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당 약관이 고객에게 부당하고 불리한 약관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소관 약관규제법(6조)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약관규제법(6조)에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 등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은 무효라고 규정돼 있다. 원고 측은 피해 분석 결과 실질누진율이 41.6배로 소비자 피해가 심각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전은 현행 전기공급 약관이 산업통상자원부의 적법한 인가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또 전기 사용자의 약 70% 가량(2013년 기준)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3단계 이하의 누진율을 적용받고 있어 과도한 불이익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한전은 현행 누진제가 전력 수요의 조절,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 재화의 적절한 배분 등 전력 공급의 공익성과 수익자부담 원칙의 실현 취지가 있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국내 주택용 전기요금 수준은 OECD 평균의 약 58%(2014년 기준)에 불과해 오히려 저렴하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가운데 누진제 선고는 잇따라 연기돼 왔다. 올해만 해도 지난 1월로 예정됐던 선고 기일이 2월로 연기됐다. 이후 인사 이동으로 담당 판사가 바뀌었다. 애초 1인당 8만1191원에서 133만1671만원까지 부당이익 반환을 청구했던 원고 측은 지난 8월 신속한 판결을 위해 부담이익 반환청구액을 10원으로 통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고일이 9월에서 10월 6일로 다시 연기됐다.

◇2만명 소송 참여..주택용 8월 전기료 1조966억원

원고 측은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법무법인 인강의 곽상언 변호사는 “변경 사유에 대해선 통지를 받지 못했지만 선한 판결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당하게 징수한 전기요금을 국민에게 반납하고 앞으로는 위법한 누진제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탈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을 포함해 서울중앙지법(4건), 서울남부지법(1건), 광주·대전·대구·부산·인천지법(각 1건) 등 한전을 상대로 총 10건의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다. 인강 측은 지난달 19일 대구지방법원에 9차 소송인단(1105세대) 소장을, 지난달 30일 인천지방법원에 10차 소송인단(1049세대) 소장을 제출했다. 소송 신청자는 2일 현재까지 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원고가 승소할 경우 한전은 그동안 누진제로 부당하게 부과한 전기료를 소비자들에게 반환해야 한다. 위법성이 확인된 누진제의 전면개편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2일 이채익 새누리당 의원이 한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8월 주택용 총 전기료(2387만5000세대)는 1조966억원으로 사상 최대치(월 기준)를 기록했다. 누진제를 본격적으로 적용받는 300kWh 초과에 속하는 가구는 1138만1000 세대에 달했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지난달 27일 국감에서 “올해 영업이익이 연결 기준으로 10조~11조원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 TF “재판 결과, 누진제 개편에 참고”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6~27일 국감에서 누진제를 즉시 개편, 산업용 요금 인상, 전력산업기반기금(가구당 3.7%)부담률 인하 등을 요구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의원들과 입장 차이를 보였다. 산업부는 한전의 전기공급 약관에 대한 인가권한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 산업통상자원부, 한전 등이 참여하는 ‘전기요금 당·정 태스크포스(TF)’는 누진제 개편 시 이번 재판 결과를 검토해 이르면 내달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TF 공동위원장인 이채익 의원은 “국민의 관심이 높은 누진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으로 보고 전체적인 개편안을 검토 중”이라며 “누진제 관련한 법원 판단이 나오면 누진제 개편 시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태희 산업부 2차관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당정 TF에서 분석 중이며 구체적 내용을 얘기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라며 “전일 발표된 더불어민주당의 안, 8월 나온 국민의 당의 안까지 수렴해서 장점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더민주는 현행 누진 6단계를 3단계로 축소하고 누진율을 2.6배로 낮추는 대안, 국민의당은 4단계로 완화하고 전력 다소비 기업의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도 지난달 26~27일 국감에서 “전기요금 체계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누진제 개편 수준, 산업용 인상 여부, 전력산업기반기금(가구당 3.7%) 부담률 인하 여부 등에 대해서는 야당과 이견을 보여 개편안이 나오면 진통이 예상된다.

▶ 관련기사 ◀
☞ [국감]주형환 장관 "산업용, 주택용보다 쌀 수밖에 없다"
☞ [국감]주형환 장관 "전력기금 부담률 인하 어렵다"
☞ [국감]전기료 개편 산으로 가나..산업부-野 ‘갑론을박’(종합)
☞ [국감]조환익 한전 사장 "올해 영업이익 11조 전망"
☞ 누진제 우려 현실화..8월 주택용 전기요금 1조 넘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확정

- 누진제 개편안 최종인가..月 37만원→19만원 인하 - [일문일답]산업부 "누진제 완화해도 전력수요 1%도 안 늘어" - 누진제 2라운드..'전력·가스시장 개방' 물꼬 튼다(종합)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