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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오·개저씨'…한국남자 진정 이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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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6.08.17 06:17:30

남자라는 유니폼 벗겨보니…
권위·경쟁 절어있는 학교
군대선 폭력·복종 겪으며
의리·가오 몰입…'여혐' 급증
남자·여자다움 중독 넘어
'사람다움 만들어야' 설파
……………………………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오찬호|312쪽|동양북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가장 많이 듣는 말을 꼽아보라면 1순위는 단연 이것이다. ‘남자가 돼서 고것밖에…’ ‘여자가 무슨…’. 남성·여성 말고 다른 성이 있다면 예외라도 둘 텐데 그럴 형편이 못 되니 이런 빈정거림은 이 땅에 사는 이상 원죄처럼 한번쯤 겪어야 하는 ‘성트라우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그 뒤엔 뭐가 있는 건가, 이 성역을 틀어쥐고 흔들어대는 무엇이? 여기서의 핵심은 ‘성구분’이 아니다. 남성을 축으로 지구를 돌려대는, 남자만의 세계관에서 삐져나온 ‘성이탈’이란 것이다. 쉬운 예로 시작하자.

약자에게 힘을 과시한 폭행사건이 생겼다고 치자. 이것이 하필 남자가 여자에게 가한 폭력이었다면 상황은 어쭙잖게 전개된다. 사건을 들여다보는 ‘보통 남자’의 시선은 대개 이렇게 고정된다.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여자를 괴롭히고 사느냐.” 폭력 자체에 죄를 묻는 것이 아닌, 남자다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 부끄럽다는 얘기다. 직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자직원이 남자상사에게 육두문자 섞인 지적을 당했다면 “그 인간, 성질 한번 더럽네”로 접고 말 일. 만약 여자상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분을 거스르는 어떤 말 한마디에도 “저 여자가 날 무시한다”고 길길이 뛸 일이 만들어지는 거다.

왜 이런 장면이 펼쳐지는가. 의외로 간단하다.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버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보다 약한 줄만 알았던 여자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거다.

고리타분한 남성과 여성의 싸움질이 다시 시작됐나보다 하는 오해는 말자. 이 모두는 여성이 아닌 남성사회학자의 고발이다. 저자는 작정을 하고 동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남성을 향한 비난과 독설로 책을 썼다. 마흔도 안 된 신체건강한 경상도 출신 남자(신상털기가 아니다. 저자 자신이 공개한 내용이다)가 이쯤하고 나왔을 때는 웬만큼 마음을 다부지게 먹은 게 아닐 거다. 대개 이런 종류의 논쟁은 진실과 상관없이 남성·여성 양쪽에서 두들겨 맞을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그럼에도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로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운을 뗀다. 왜 어째서? 군대라는 최상의 경력증명서에, 가오(허세) 하나로 세상을 평정하고, ‘아재’도 모자라 ‘개저씨’라 불려도 전혀 꿀릴 게 없어 보이는데 뭐가 무섭다는 건가. 책은 바로 그에 대한 설명이다. 비판과 비난, 측은지심과 안타까움까지 모조리 담아낸다. 다만 성급한 해결책을 내려고 하진 않는다. 세상 오지랖의 대명사격인 ‘남자다움’ ‘여성다움’의 비극을 모아볼테니 독자 스스로 답 한번 찾아보라고 권할 뿐이다.

▲‘남성다움’ ‘여성다움’의 처절한 비극

저자가 조목조목 뜯어본 남자는 외계인이 아니다. 주변서 늘 볼 수 있는 ‘보통 남자’다. 그들은 지난 5월 ‘묻지마 살인사건’이 벌어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는 가면시위를 했고, 쓰레기 분리수거만 하면서도 “내가 가부장적인 남편이 아니라서 아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군대 고생담에 혀를 휘두르면서도 “그래도 남자란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고 외치고, 술 한 잔 들어가면 “여자가 나대는 걸 봐줄 수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건가. 저자는 그 열쇠로 군대와 학교교육을 우선 꼽는다. 남자로부터 생기는 문제의 근원은 열에 아홉이 군대·의리·가오에서 나온다는 거다. 권위주의와 경쟁주의에 절어 있는 학교를 마치고 폭력·명령·복종이 절대적인 군대를 거치면서 남자(생물학적 성)는 점점 남성(사회적 성)으로 변해간다고 했다. 이 지난한 과정을 지나며 남자는 소통능력과 공감능력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데. 자칫 더 진행하면 ‘아재’와 ‘개저씨’로까지 변질돼 가고.

▲“내가 배워야 할 건 군대서 다 배웠지”

큰 스포츠경기를 앞뒀거나 정신무장이 필요할 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유행처럼 거치는 코스가 있다. 이른바 ‘병영캠프’다. 진흙바닥을 구르고 통나무 들고 고함을 지르며 화생방훈련까지 끝내야 비로소 ‘준비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 젊은 시절 ‘눈 딱 감고’ 2년만 참으면 대한민국 남자로서 평생 프리미엄을 누리는 시스템이야 오죽하겠는가. 군대서 적응을 잘한 사람은 한국사회 어디서도 적응할 수 있다. 당연하다. 그냥 대한민국이 군대니까.

‘군대 가면 정신차린다’ 혹은 ‘군대 가서 정신차려야지’는 농담과 진담을 넘나드는 몇 안 되는 중의적 표현이다. 얼핏 들으면 군대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템플스테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젠 대충 다 아는 사실이 있다. ‘정신차린다’는 게 군대가 아닌 곳이 왜 그리 소중한지를 ‘번쩍’ 알게 해준다는 속뜻을 품었다는 것 말이다.

‘개저씨는 혁명의 단어’란 파격도 덧붙였다. 신조어일 뿐 새로운 인간의 등장을 뜻하진 않는다고. 저자가 따져본 개저씨의 어원은 이렇다. ‘꼰대질을 일삼는 중년남성’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보호를 받으며 훈계라는 고상한 지위를 얻었단다. 그런데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 덕에 수많은 아저씨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됐다는데. 이 방종을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인 양 착각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개저씨란 거다. 창피를 무릅쓰고 이성을 잃어버리는 특징이 있다고. 반말을 하고, 사생활을 묻고, 스킨십이나 성적 농담을 일삼고, 지위를 이용해 아랫사람을 하대하고, 가부장적 생각을 강요하고. 그래도 ‘내가 혹여 개저씨가 될 가능성’을 늘 걱정하고 조심한다면 언어의 혁명성은 충분히 달성된 거라고 단언했다.

▲남성·여성 넘어 ‘사람다움’이 가능한가

저자가 볼 땐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이분법적 시각의 골이 가장 깊다. 최근 드러난 ‘여성혐오’라는 것도 이상한 남자다움을 강요받던 누군가가 여자다움에 길들지 않은 사람에게 불만을 느끼는 불편함에 다름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신중을 기한 건 이 처절한 비극이 결코 남성·여성의 개인 탓이 아니란 거다. 국가가 또 사회가 제작한 시스템이 저질러 놓은 일인 거다. 그러니 이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시스템의 잘못된 얼개는 바로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곡해는 말라고 누누이 이른다. “여자도 인간으로 존엄하게 살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뜻이지 남자의 권리를 뺏자는 의미는 아니”라고.

세월이 흘러도 남자의 가치가 상승하는 시대가 다시 올 리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니 준비가 필요하단다. 방법은 세상을 오로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잣대, 아니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이란다. 그렇게 ‘사람다움’에만 구속받는 세상.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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