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장군(예비역 대장) 안장 문제는 올해 장군 자신이 직접 현충원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백 장군이 자신의 친일 이력 때문에 사후 예우에서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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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예비역 단체인 대한민국육군협회는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전쟁 영웅”이라며 통합당과 같이 서울현충원 안장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도 “구국의 영웅인 백 장군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라”며 같은 요구를 내걸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유족, 후손들이 만든 단체들 생각은 다르다. 25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로 이뤄진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은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면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악질 친일파를 후대에 6·25 공로가 인정된다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이 정령 나라다운 나라인가”라고 되물으며 백 장군 현충원 안장 결정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간도특설대 출신이 국군의 뿌리가 되고 구국의 영웅이라 함은 헌법을 거스르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겠다는 말”이라며 백 장군의 국립묘지 안장이 독립운동과 후손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 장군이 한국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를 이끄는 등 전쟁 공로를 인정받은 인물인 것은 사실이나, 항단연 주장대로 해방 전 만주국 간도특설대로 활동한 이력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있다.
간도특설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 괴뢰국이었던 만주국 육군 소속의 군사 조직으로, 만주에서 활동하는 항일 조직을 토벌하기 위해 조직됐다. 1938년 창설된 이 부대는 “조선인을 잡는 데는 조선인을 쓴다”는 일제 ‘이이제이’ 전략에 따라 부대장을 제외하고 병사 전원이 친일 조선인으로 구성됐다. 토벌 활동 역시 잔혹하고 악랄한 것이 당대에 알려져 간도특설대에 가담했던 이들은 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편찬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돼 있다. 백 장군도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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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판에는 빠진 ‘군과 나’ 간도특설대 활동 부분에서 백 장군은 만주에서 만들어진 항일투쟁 군사조직인 동북항일연군을 ‘게릴라’로 부름으로써 당대 일본 제국주의에 경도된 시각을 숨기지 않는다. 또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 책략에 빠져든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우리 토벌로 한국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니다”며 자신의 활동을 정당화한다.
백 장군은 “동포들을 향해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적는가하면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 쥔 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고, 간도특설대 대원들은 하나같이 그런 기분을 가지고 토벌에 임했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백 장군은 뚜렷한 친일 이력에도 한국전쟁 당시의 전공으로 생애 대부분 기간 명성과 혜택을 누렸다. 항단연 역시 “6·25 공로를 인정하더라도 지금까지 혜택에 만족해야 한다”며 현충원 안장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15일 안장식을 앞둔 가운데 일단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빈소를 찾아 고인을 조문함으로써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친일 논란을 의식해 당 공식 논평도 내지 않았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빈소를 찾아 “고인께서 6.25 전쟁에 큰 공훈을 세우셨다”며 유족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