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영수 기자] 사드(THAD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배치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중국이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무차별 사냥에 나서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는데만 앞장서면서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먹잇감이 되고 있는 셈이다.
◇中 해외 기업사냥에 264兆 융단폭격...韓 기업도 무차별 싹쓸이
중국이 한국을 포함한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상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기보다 아예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사들여 단숨에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도 M&A에 불씨를 당겼다. 중국 당국은 해외 자산 인수 독려를 위해 지난 2014년 5월 국영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거래액 기준을 1억달러에서 10억달러(약 1조1089억원) 이상으로 10배나 상향조정했다. 인가제였던 진행 방식도 신고제로 변경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딜로직(Dealogic)이 잠정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지난해 해외 M&A 실적은 총 2254억달러(약 264조원)로 7년래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 자본중 안방보험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안방보험은 동양생명에 이어 알리안츠생명까지 인수하는 광폭 행보로 주목받았다. 심지어 우리은행 지분(4%)까지 인수하면서 한국시장을 ‘안방’으로 삼으려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ING생명 인수전에도 중국계 타이핑보험과 푸싱그룹, JD캐피탈 등이 지속적으로 입질을 하고 있다. 매물로 등장했던 KDB생명도 중국계 전략적 투자자(SI)가 참여했다.
중국 자본은 기술력이 우수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코스닥 기업들도 대거 쓸어 담았다. 웹젠, 소리바다, 넥스트아이, 한국콜마, 처음앤씨, 디지털옵틱, 덱스터 등은 지난해 중국 기업이 지분을 취득해 주주로 올라선 기업들이다. 웹젠은 NHN엔터테인먼트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19.2%가 중국 게임사 아워팜 계열의 ‘펀게임’에 매각됐다. 소리바다는 상하이ISPC의 자회사로 홍콩 소재 유한회사인 ISPC가 지분 5.61%를 취득했다.
한류바람을 타고 국내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도 싹쓸이했다. 아시아 최대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화이브라더스는 HB엔터테인먼트 지분 30%를 421억원에 인수했다. HB엔터는 지난 2013~2014년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제작한 업체다.
앞서 화이브라더스는 심엔터테인먼트 지분 30.4%를 228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중국 알리바바는 355억원을 투입해 SM엔터테인먼트 지분 4%를 사들였다. 중국 최대 마케팅 기업인 화이자신은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 지분 12.62%를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쑤닝유니버셜은 FNC엔터에 대한 지분투자로 2대 주주(22%)가 됐으며 DMG그룹은 초록뱀미디어를 인수했다.
◇쌍용차·하이디스 등 中 먹튀 경계...금호타이어도 우려 목소리
중국 자본의 침투가 심화되면서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005년 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했을 때 4년 만에 손을 떼고 떠나면서 ‘먹튀’ 의혹이 일었다. LCD업체 하이디스도 2002년 중국 비오이(BOE)에 매각됐지만 4년 만에 부도 처리되면서 핵심 기술과 일자리만 잃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중국 타이어 회사 더블스타(Qingdao Doublestar Co Ltd.,) △상하이 에어로스페이스인더스트리(SAI) △화학회사 지프로(Jiangsu GPRO) 등이 참여한 금호타이어 인수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제기된다. 핵심 기술력만 빼돌리고 껍데기만 남겼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투자가 경영권뿐 아니라 주요 주주로 올라서는 사례가 많아 우려스럽다”며 “중국의 거대 자본이 배스나 블루길 등 생태계 교란종처럼 국내 M&A 시장을 왜곡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